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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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없고 에어매트는 뒤집힌 부천 호텔 화재 참사 [논설실의 관점]

8∼9층 투숙객 7명 사망·12명 부상
안전불감증이 빚은 후진국형 人災
공기압 적절 여부 등 정밀 조사해야
고층화재 대응 매뉴얼 재점검하길

22일 오후 7시 39분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9층짜리 호텔 8층 객실에서 불이 나 투숙객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방 당국은 누전이나 에어컨 스파크 등 ‘전기적 요인’을 가장 유력한 화재 원인으로 보고 있다. 2003년 준공된 이 호텔에는 화재 예방의 기본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니 예고된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불이 나기 전 한 투숙객이 8층 객실에 들어갔다가 호텔 측에 “타는 냄새가 났다. 객실을 바꿔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화재 당시 대피를 안내하는 직원도 없어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안전불감증이 빚은 후진국형 인재(人災)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23일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의 한 호텔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 등이 오전 합동 감식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스프링클러가 아예 없었는데도 방치돼왔다는 점이다. 스프링클러는 관련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별로 설치하도록 의무화됐지만, 의료기관 등을 제외하곤 설치 의무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은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고 해서 손을 놓은 채 방관할 문제가 아니다. 스프링클러 사각지대를 메우려면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당국이 추가적인 안전 조치와 현장 점검을 서둘러야 한다. 화재에 취약한 고층 건물은 이뿐만 아니다. 아파트도 11층 이상 공동주택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와 방화문 설치를 의무화한 2004년 5월 30일 이전 지어진 경우 불이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아파트가 서울에만 200만 가구가 넘는다니 걱정이다. 정부가 고층 건물 화재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때다.

 

이번 참사에서 특히 안타까운 것은 투숙객 2명이 8층 객실에서 화염을 피해 지상의 에어매트로 뛰어내렸으나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에어매트는 최후의 구조 수단이다. 현장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한 여성이 에어매트 모서리로 떨어지면서 매트가 뒤집히듯 공중에 섰고, 불과 3∼4초 차이를 두고 뛰어내린 남성은 매트 위가 아닌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소방 당국도 “에어매트가 처음에는 제대로 설치돼 있었는데 투숙객들이 뛰어내리면서 뒤집힌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말마따나 에어매트가 뒤집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적절한 규격을 사용했는지, 공기를 과도하게 넣어 압력이 높아졌던 건 아닌지 등에 대해 심층 조사할 필요가 있다.

지난 22일 오후 7시 39분께 경기도 부천시 중동 호텔에서 불이 났다. 사진은 화재 현장에 설치된 에어매트 모습. 연합뉴스

최근 한밤중 도심 호텔 화재가 잇따라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달 16일 0시 10분쯤 서울 송파구 석촌동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투숙객 등 31명이 긴급 대피했고 7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소형 호텔들이 매출 늘리기에 급급할 뿐 정작 화재 안전 관리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텔업계는 이번 일을 남의 일로 여겨선 안 된다.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시설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