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가 노르망디 침략 막기 위해 세운 푸제흐성/발자크·빅토르 위고 작품 무대/현지인 크레페 맛집 티바브로와 시드르 곁들이면 맛의 ‘신세계’/고성투어 시작되는 소뮈르성 오르면 아름다운 루아르강 파노라마로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빛바랜 성벽. 여기저기 파이고 부서져 내렸지만 3중의 견고한 성벽은 천 년 가까운 시간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섰다. 성벽을 따라 우뚝 솟은 12개의 망루는 긴박한 순간에도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지휘하던 장교처럼 기세가 당당하다. 프랑스 브르타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푸제흐(Fougères) 성. 안으로 들어서자 휘몰아치는 백년전쟁의 역사가 스펙터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백년전쟁 역사 담긴 푸제흐성
몽생미셸을 떠나 남쪽으로 차를 몰면 1시간 만에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일에빌렌주의 푸제흐 마을에 닿는다. 오후에 몽생미셸을 투어하면 근처에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푸제흐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하룻밤 쉬어가기 좋다. 더구나 루아르 고성투어와 와인투어가 시작되는 소뮈르로 향하는 길에 푸제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추게 된다. 땅거미가 내린 푸제흐 마을로 들어서자 프랑스 작은 마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담한 중앙 광장에 옹기종기 모인 카페와 레스토랑엔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저녁을 즐긴다. 셰프 솜씨가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아 샤퀴테리 세트를 주문하자 제법 풍성하다. 늦은 저녁이라 와인 한잔 곁들이니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늦잠을 자고 발자크 호텔나서 마을 산책에 나선다. 호텔 이름이 왜 발자크인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유가 있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비평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1829년 마을에 머물면서 ‘올빼미 당원들(Les chouans)’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12세기에 지은 생 레오나르(Saunt Leonard) 교회에서 푸제르 여행을 시작한다. 화려한 네오 고딕 스타일의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중세 대성당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연상시키는 장미창으로 은은한 햇살이 스며든다. 장엄하고 거룩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사색의 시간에 빠져든다.
교회 뒤쪽으로 들어서자 좌우 대칭의 전형적인 프랑스식 정원이 여행자를 반긴다. 알록달록 다양한 여름꽃들이 활짝 피어 가슴도 싱그러운 색으로 물든다. 정원으로 내려서기 전 언덕에서면 마을과 푸제흐성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푸제흐 마을 골목길을 돌아나갈 때마다 “예쁘다”는 탄성이 저절로 터진다. 마을을 흐르는 작은 낭송강을 따라 시간이 멈춘 풍경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이 푸제흐 마을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니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난 크레페 전문점 티바브로(Tivabro)로 들어서자 아직 점심때가 멀었지만 가득 찬 손님들로 활기가 넘친다. 신선한 양송이버섯 가득 넣은 접시만 한 크레이프 한입 깨물자 촉촉한 계란과 햄이 어우러지며 미각세포를 모두 일깨운다. 직원이 추천한 사과 와인 시드르를 곁들이니 미식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목적 없는 이처럼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생 술피스(Saint Sulpice)교회가 등장하고 이어 푸제흐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 앞 골목에는 성벽과 닮은 외벽으로 꾸민 오래된 집들이 늘어섰고 예쁜 꽃들로 치장한 노천카페엔 여행자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행의 낭만을 나누는 풍경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흐른다.
◆백년전쟁 역사 담긴 푸제르성
푸제흐성 입구인 생힐레어탑을 통과하면 순식간에 고색창연한 중세로 타임슬립한다. 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이중삼중으로 성벽을 쌓고 촘촘하게 망루를 세운 모습이 이채롭다. 바깥 요새에는 물이 흐르는 해자를 만들고 주변에 여러 탑을 만들어 적이 침입할 때 교차사격을 퍼붓게 만들었다. 적들이 한 번 함정에 빠지면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구조다. 바깥마당은 주민들의 일상 터전으로 채소밭, 가축 헛간, 저장시설, 작업장, 예배당, 영주의 저택 등이 있었다. 이제 폐허가 돼 형태만 어렴풋이 남은 저택의 규모가 한때는 화려했던 시간을 무성영화처럼 전한다.
안쪽마당의 가장 높은 언덕에 높이 솟은 두 개의 망루는 고블랭탑과 멜뤼진탑. 높은 탑에 갇혀 사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라푼젤이 어디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위고가 프랑스 대혁명 상황을 묘사한 작품 ‘93(1879년)’에서 푸제흐 성의 ‘맬뤼진(Melusine)’ 탑을 상세히 묘사했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성에는 물을 이용해 풍차를 돌리는 수력발전기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세기 무렵 푸제르성에는 방앗간 네 개가 설치돼 시간당 100㎏의 밀가루를 생산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도 온전하게 남아 성의 안내센터 운영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한다 대단한 유산이다. 푸제흐성은 원형이 잘 보존됐고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세시대의 요새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푸제흐성은 브르타뉴가 노르망디의 침략을 막기 위해 11세기 경계지점에 방어용 요새로 지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곳이기도 하다. 휴전 기간이던 1449년 3월 영국이 고용한 용병대장 프랑수아 드 쉬리엔이 특공대 600여명을 이끌고 성을 야간기습, 주민을 모두 학살하고 성을 뺏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왕 샤를 7세에게 지원군을 요청, 성을 탈환하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백년전쟁이 끝난 뒤에는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2세가 독립적인 지위를 요구하며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또 다시 대규모 전투에 휘말린다. 바로 ‘미친 전쟁(Guerre folle·1485-1488년)이다. 프랑수아는 프랑스에 완패하며 항복했고 브르타뉴의 유일한 상속녀 안느(Anne)가 프랑스 왕 샤를 8세와 결혼하면서 브리타뉴는 프랑스에 흡수, 역사의 막을 내린다. 지금도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푸제흐성은 프랑스 왕 앙리 2세가 애첩 디안느(Diane)에게 선물로 주면서 디안드가 1547~1566년 성을 소유했다.
◆소뮈르성에 올라 루아르강을 보다
천년 역사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2시간20분을 달리면 루아르 고성 여행이 시작되는 소뮈르다. 루아르강은 프랑스를 동서로 가로질러 무려 1000㎞를 흐르며 강을 따라 고성들이 즐비해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린다. 워낙 화려하고 거대한 고성이 많아 소뮈르성은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성의 아름다운 하얀 탑과 굽이치는 짙푸른 루아르강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고즈넉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네 귀퉁이를 꾸민 둥근 탑과 그 위에 짙은 회색 지붕을 얹은 소뮈르성의 자태는 한껏 차려입고 무도회에 나서는 귀부인 같다.
성 앞을 꾸민 포도밭에선 수확기를 앞둔 포도가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다. 잔디 광장엔 한 가족이 돗자리를 펴고 루아르강을 바라보며 오후의 피크닉을 즐기는 풍경이 마냥 여유롭다. 옛사람들도 이런 풍경에 흠뻑 반했나 보다. 랭부르 형제의 15세기 채색서적 ‘베리 공작 기도서’ 삽화에는 소뮈르성이 등장한다. 예쁜 계단을 올라 테라스에 오르면 석조 아치형으로 만든 소뮈르 다리가 루아르강 위를 가로지르는 풍경이 대화면처럼 펼쳐진다.
13세기 왕실 요새로 지어진 소뮈르성은 14세기 후반 앙주의 루이 1세 공작이 화려한 궁전으로 개조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아픈 역사도 담겼다. 17~18세기 재판 없이 투옥된 정권 반대자와 영국 해군 포로들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됐고 무기와 탄약고로 쓰이기도 했다. 현재는 박물관이다. 14~18세기 화려한 가구와 태피스트리, 도자기 등 다양한 장식 미술품과 세계적인 승마 도시답게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안장, 재갈, 등자 등 다양한 마구류가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