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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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은행 대출금리 인상에 금융당국 개입 시사, 뒷북 대응 아닌가

0%대 금리 때보다 ‘영끌’ 더 늘어
한은 긴축에도 정책금융 ‘엇박자’
일관된 정책·모든 수단 강구 필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방송에서 “최근 은행 가계대출 금리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면서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더 세게 개입에 나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관리를 손쉽게 금리 인상만으로 대응하는 은행권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은행권이 대출금리를 올리며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을 감안하면 이 원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국민들이 공감할지는 미지수다.

이 원장이 ‘관치금융’ 논란을 무릅쓰고 개입 시사를 내비칠 정도로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5대 은행의 7월 말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559조7501억원으로 월간 최대 기록이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담대 신규 취급액이 ‘영끌’ 열풍을 불러온 0%대 초저금리(2020년 5월∼2021년 11월 기준금리 0.5∼0.75%) 때보다 늘어난 게 우려스럽다. 당국과 은행권 모두의 책임이다.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정부의 ‘뒷북대응’으로 가계대출과 집값을 잡기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내달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시행하면서 수도권 가산금리를 1.2%포인트 상향하기로 했지만 정부가 시행을 두 달 늦추면서 ‘막차 수요’를 불러왔다. 수도권의 6월 아파트 매매건수가 2021년 2월(50.4%) 이후 처음으로 지방을 앞지른 게 방증이다.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는 핑계를 들어서 13번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와 반대로, 주담대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디딤돌대출 등 정책금융을 대거 풀어 가계부채 상황을 악화시킨 것도 금융당국이다. 뒤늦게 정책금융을 죈다고 호들갑이지만 약발이 먹힐 리 없다. 금융권도 자성해야 한다. 이 원장의 말처럼 은행이 대출 물량이나 자율적 DSR 관리, 갭투자 대출 등은 소홀히 한 채 이자장사만 했다는 지적을 곱씹어봐야 한다.

더 이상의 늑장대응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만 키울 뿐이다. 가계부채를 줄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 원장은 “단순히 DSR 하나로는 안 된다”고 했다.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가계대출과 집값 추이를 살피면서 모든 수단을 검토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 강화, 대출총량 규제 등도 검토 대상에서 배제해선 안 될 것이다. 일관된 금융정책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안정에 매진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