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7명 등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부천시 코보스호텔 화재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호텔 측은 “탄 냄새가 난다”는 투숙객 지적에도 안전불감증을 드러냈고, 소방당국은 고층 건물 화재 시 효과적인 사다리차 대신 에어매트를 펼치는 등 아쉬운 초동대응을 보여줬다. 제도적 허점으로 초기 화재 진압에 효과적인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도 인명 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였다.
◆“탄 냄새 난다”는데 대피 안내 없어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앞서 810호 객실을 예약했던 투숙객은 “에어컨 쪽에서 ‘탁탁’ 소리가 나고 탄 냄새가 난다”며 22일 오후 7시35분쯤 빠져나와 1층 안내데스크로 내려와 방 교체를 요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날 근무하던 직원이 점검을 가던 중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이후 빠르게 연기가 확산되며 대규모 사상자를 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피를 안내하는 직원이 없었다고 한다.
이 호텔은 불과 4개월 전 민간 소방시설관리업체에 맡긴 자체적 점검 때 아무런 지적 사항이 나오지 않았다. 소방시설법에 따라 1년에 두 차례 진행하는데 지난 4월 “양호하다”는 결과를 부천소방서에 통보했다. 형식적으로 자체 점검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소방당국은 에어컨에서 튄 스파크가 먼지, 침구류 등과 만나 순식간에 화마가 덮친 것으로 추정 중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에어컨에서 불똥이 떨어져 그 아래 소파와 옆 침대에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 아냐
참사가 벌어진 코보스호텔은 4층이 없어 사실상 8층짜리 건물이다. 2003년 3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스프링클러가 관련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마다 설치하도록 의무화된 탓에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소방시설 관련 기준은 계속 강화되고 있으나 개정 기준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광주시는 2019년 발생한 모텔 화재를 계기로 국토교통부에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건의했다. 6층 이상으로 조건을 둔 배연설비 설치 의무 대상을 5층 이하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해 12월 북구 두암동 한 모텔에서 30대 남성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방화해 3명이 죽고 30명이 다친 사건이 계기였다. ‘큰 사회적 비용’을 이유로 5년째 진전이 없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70건 정도로 1843건 발생해 32명이 숨졌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관련법 개정 이전 건물에도 의무 설치 규정을 소급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병원이나 노인시설 같은 피난약자가 있는 곳에 소급적용한 것처럼, 건물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숙박업소 투숙자도 동일하게 피난약자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골든액션 놓쳐”… 매뉴얼 마련돼야
소방당국의 초동 대응도 아쉬운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류상일 동의대 교수(소방행정학)는 “8층 이상에선 사다리차 투입이 우선 검토돼야 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 주변에 지정 주차구역과 불법주차 차량들로 고가 사다리차 배치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에어매트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매뉴얼상 한 사람씩 중앙으로 떨어져야 했지만 이런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최초 대피자는 공기 주입이 덜 된 상태로 떨어졌고, 뒤이어 3초 간격을 두고 뛰어내린 사망자에게도 낙하 요령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유도조차 못 했다는 판단이다. 에어매트를 향해 뛰어내린 투숙객 2명이 사망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소방대원들이 에어매트를 직접 잡았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관련 규정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추락사를 둘러싸고 소방당국의 지휘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8층에서 떨어지는 에너지를 봤을 때 충분히 넘어가고도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골든타임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골든액션이다. 골든액션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