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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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스드메’가 저출생 대책일 때

올 초 결혼식을 올린 지인으로부터 최근 결혼 비용이 급격하게 올라 결혼 준비가 힘들었다는 토로를 들었다. 예식에 드는 비용 전반이 최근 1∼2년 사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는데, 남들 다 하는 것을 안 할 수도 없고 업체도 제한적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한 번 급감했던 결혼 수요에 관련 업계가 단가 상승으로 대응했고, 코로나19 여파는 사라졌지만 결혼 인구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업계로서는 비용을 낮출 요인보다 올릴 요인만 남아있는 셈이고, 지인의 말마따나 “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부르는 게 금’인 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보였다.

 

당사자 간의 결합이라는 의미보다 집안 간의 만남, 소위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것을 알릴 하나의 의식으로 기능하는 한국의 결혼식은 일찌감치 ‘K결혼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을 초대해 번듯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고 근사한 프러포즈를 자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모두 구매 가능한 아이템으로 개발됐다. 남은 것은 최대한 많은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일이었다. 없는 욕망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은 1면에 한국의 프러포즈 비용이 명품, 호텔 이용 등으로 570만원에 달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수습기자 시절 ‘작은 결혼식 트렌드’를 취재하던 중 대비되는 이야기를 듣고자 청담동 웨딩 스튜디오들을 무작정 찾아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이 정말 산업화되어 있음을 실감한 계기였다. 웨딩 플래너도 없고 예약도 하지 않은 워크인(walk-in) 손님을 의아해하면서도 담당 직원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디에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 설명했다. 요약하면 “인생에 한 번뿐인 날이고 그날의 주인공이시잖아요”라는 말로 웨딩 사진 앨범과 용도별로 여러 벌의 드레스 등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비슷한 또래 여성이던 취재원 한 명은 이 얘기에 “그날의 주인공이 왜 신부냐”며 바로 거부감을 표했다. 화려하고 거창하게 결혼 예식을 하며 여성을 주인공으로 치켜세우는 ‘단 하루의 의식’에 판타지를 갖는 여성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배되는 프러포즈 사진들이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이를 반영하지 못했고, 한국의 결혼산업은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단가 높이기 전략으로 생존을 이어갔다.

 

지난달 말 정부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로 불리는 결혼준비 서비스 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8월 중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 1번 안건으로 예비부부가 이용하는 스드메가 오른 것이다. 과다한 위약금, 부대서비스 끼워팔기, 불투명한 가격 정보 등을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점검하겠다고 한다. 

 

결혼 비용 문제를 바로잡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결혼 자체가 점점 외면받는 시대에 결혼 서비스 업체의 약관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게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라는 현실은 아쉬움이 크다. 결혼이 산업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은 놔둔 채 업체의 문제로 축소하며 단순히 돈 문제로 여기는 데 대한 반감일 것이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