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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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기 물 맞으며 극적 생존’ 20대 여대생…전문가들 “화장실은 고립· 질식 위험”

7명이 숨지는 등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 생존자가 “화장실로 대피해 샤워기를 틀고 버텼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 “화재가 나면 화장실로 대피해야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립된 공간은 질식 위험이 있다며 무조건 화장실 대피가 안전하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22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숙박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화재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27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화재 당시 이 호텔 806호에 머물렀던 투숙객 A씨는 객실 화장실에 대피해 있다가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강원 강릉의 모 대학 간호학과 학생인 A씨는 인근 병원 실습을 위해 이곳에 투숙했다고 전해졌다. 발화 지점인 840호와 인접한 곳인 만큼 불이 난 것을 바로 인지 할 수 있었다. 

 

A씨는 대피 당시를 떠올리며 “출입문을 열었는데 복도 전체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며 객실 화장실로 향한 이유를 밝혔다. 객실 반대편 창문도 열어봤지만, 연기가 계속해서 확산하는 것을 보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해 모든 문을 닫고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A씨는 화장실로 간 뒤 119에 전화를 걸었고 소방대원의 안내에 따라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수건으로 막고 샤워기를 틀어 머리에 대고 있었다고 한다. 긴박한 순간에서 샤워기에서 뿜어나온 물이 수막을 형성해 일시적으로 유독가스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정보가 떠오른 것이다.

 

A씨가 기지를 발휘해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샤워기에서 흐르는 물을 맞고 있던 그는 인명 수색 작업 끝에 무사히 구조됐다.

 

사연이 전해지자 “침착하게 대처를 잘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안도 섞인 반응이 나왔다. “앞으로 불나면 일단 화장실로 가야겠다”, “화재가 나면 화장실로 뛰어가겠다” 는 반응도 이어졌다. 

 

하지만 A씨의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특히 화장실은 보통 환기구가 있어 연기 유입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와 경찰, 소방 등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화재로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부천 호텔에서 최초로 불이 난 곳으로 확인된 객실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소방관 출신인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뉴시스에 “결론부터 말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라며 “화재가 화장실까지 확산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그랬다면 결국은 고립돼 유독가스에 의해 사망했을 수 있다. 운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도 “이번 사례의 경우 생존을 하셔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권고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그런 방법이 맞았다면 그동안 많은 분들이 화장실에서 질식해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실제로 소방안전 교육을 할 때 교육생들에게 얘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출입구나 베란다가 막혀 있고 복도에 연기가 가득 차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중요한 것은 화장실 문을 닫고 수건으로 문 틈을 막은 뒤 수건에 샤워기로 계속 물을 뿌려 최대한 연기를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단순히 문 쪽이나 자기 자신에게 물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연기나 유독가스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이번 호텔 화재의 경우 객실 화장실에 환기구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화장실의 경우 다른 층의 실들과 다 연결돼 있다”며 “환기구를 통한 연기 유입이 다른 공간보다 먼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화장실이 꽉 막힌 곳이라는 점에서 바깥의 화재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꼼짝 없이 갇히거나, 구조나 수색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화재 발생 시 상황별 대피 요령을 정확히 숙지하고, 완강기 등 피난기구 사용법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먼저 화재 발생 시 연기는 위로 확산되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곳보다 아래층에서 불이 나면 위층인 옥상으로, 위층에서 불이 나면 1층 건물 밖으로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불이 났다면 무조건 대피하기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기하는 것이 좋다. 출입문을 열었을 때 복도나 계단에 연기가 자욱하다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에어매트는 5층 이하까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에어매트는 5층 용, 10층 용, 20층 용이 있지만 고층에서 뛰어내릴 때는 부상 혹은 사망의 위험이 있다.

 

10층 이하에서 탈출한다면 완강기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다. 완강기는 창틀과 연결된 로프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장치로, 10층까지 설치하게 돼 있다. 다만 완강기가 설치돼 있더라도 위치나 이용 방법을 모르면 활용할 수 없어 훈련이 필요하다. 이번 부천 화재 때도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를 활용해 탈출한 투숙객은 없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