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선명한 입장 차를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실은 28일 한 대표가 의료 대란 해소를 위한 중재안으로 제안한 ‘2026학년도 증원 유예’ 방안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30일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만찬 일정도 대통령실의 통보로 순연되면서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료 개혁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관된다. 변함이 없다”며 “한 대표 의견과 무관하게 항상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한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유예’ 입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교체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대통령실은 또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만찬을 추석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당정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민생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고 설명했지만, 윤 대통령이 의료 개혁 기조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한 한 대표에게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를 ‘패싱’하고 원내지도부에만 만찬 연기 사실을 사전에 알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만찬 연기와 관련해 “제가 이야기 들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한 대표 역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 대표는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번진다는 해석이 나온다’는 질문에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의료 개혁의 명분보다 의료 대란 해소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또 “당이 민심을 전하고,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과 만나 의료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미애 의원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의대 증원 문제가) 당정 갈등으로 비화하는 식으로 비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 대표 주변에선 대통령실을 겨냥한 뼈 있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친한(친한동훈)계인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채널A 라디오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가)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병원 의료 서비스가 마비되는 상황은 아니니 큰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며 “이분은 거의 달나라 수준의 상황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동혁 최고위원은 “국민의 불편과 응급 환자들의 상황에 비춰볼 때 당에서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 많은 의원도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내지도부는 대통령실에 보조를 맞추며 한 대표와 거리를 두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가 여러 단체 또는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한 것 같다”며 “(의대 정원 증원) 유예 관련해서 사전에 심도 있게 상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추 원내대표는 이어 “의료 개혁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정부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여당 의원들에게 직접 정부의 입장과 기조를 설명하며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9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장상윤 사회수석, 박 차관이 참석해 응급실 상황을 포함해 의료 개혁의 현주소를 충실히 설명하고, 일문일답 시간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원내행정국은 이날 소속 의원 전원에게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의료 개혁 필요성을 역설한 대국민 담화문 전문을 연찬회 참석 전까지 일독하라고 당부하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추 원내대표가 한 대표에 맞서 의료 개혁에 대한 당정 일체 기조를 다지기 위해 의원들 군기 잡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