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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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간첩죄 처벌 못하는 韓… 미·중·일·러 흑색요원들 활보”

유창준 前 국정원 방첩국장 인터뷰

국가기밀 넘겨도 ‘적국 간첩’만 적용
北서 ‘외국’으로 범위 넓혀 법 고쳐야
중국에 군사기밀 유출 정보사 요원
軍검찰, 간첩죄 적용 못하고 구속기소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간첩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행 간첩법(형법 98조) 개정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현행법은 ‘적국 간첩’만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법대로라면 북한 외 어느 나라를 위해 간첩 활동을 해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어서다. 법 개정 주장의 핵심은 법 조문상 ‘적국’을 ‘외국’으로 고치자는 것이다. 2004년부터 국회에서 이어져 온 간첩법 개정 논의는 정쟁 속에 번번이 뒷전으로 밀리며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밟아왔다. 여기엔 ‘요즘 간첩이 어디 있느냐’는 풍조 속 국민적 관심이 저조했던 점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창준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태의 심각성과 외국 간첩들의 국내 활동 실상 등을 설명하며 간첩을 처벌 못 하는 현행 간첩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유창준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엔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정보국(CIA), 일본 내각정보조사실(CIRO), 독일 연방정보국(BND),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대외정보국(SVR), 중국 국가안전부(MSS) 등 각국 정보기관원들이 들어와 온갖 정보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전 국장은 “이들은 (신상이 공개된) 백색 신분부터 외교관(회색), 나아가 상사 주재원이나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속인 흑색 요원(일명 블랙 요원)으로 들어와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방첩국장은 정무직인 원장과 차장을 제외하면 국정원 직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으로 알려졌다. 유 전 국장은 문재인정부 시절 방첩국장을 역임했다.

 

세계일보는 지난 27일 서울 용산 사옥에서 유 전 국장을 만나 군 정보요원 신상 유출의 심각성과 간첩 활동 유형 등을 국가안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인터뷰했다. 전·현직을 통틀어 국정원 방첩국장이 신분을 밝히고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 전 국장은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묻자 “이번에야말로 여야가 합의해 간첩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 전 국장은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위험요인에 대응하기 위한 법 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중국에 군사기밀을 누설한 정보사 요원(군무원) A씨를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북한에 기밀을 유출하거나 간첩 활동을 한 자에게만 적용되는 간첩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단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중국의 정보요원(추정)에게 포섭됐고 2019년부터 돈을 받고 총 30여회에 걸쳐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수사 단계에서 확인됐다. A씨가 금전을 받고 군사기밀을 빼돌렸지만 북한과의 연계성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은 탓에 공소장에는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시되지 않았다. 현행 형법이나 군형법상 간첩죄는 적, 적국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한 자에게 적용되고 적국은 북한을 뜻한다. A씨가 정보를 넘긴 중국 요원은 현재까진 중국 정보기관 소속으로 파악돼 북한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 군사상 이익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하는 ‘일반이적’ 혐의만이 적용됐다.


배민영·구현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