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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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론 감시 기능 위협하는 딥페이크 범죄, 민주주의 敵이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어제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한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딥페이크 음란물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음란물을 만드는 가해자들이 딥페이크 범죄를 취재·보도하는 기자들까지 위협하고 나섰다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언론의 감시 기능이 범죄자들에 의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당국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한다.

당정은 먼저 현행법상 최대 징역 5년인 허위영상물 유포죄 형량을 7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정도 상향으로 범죄의 근본적 억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회는 추후 입법 과정에서 처벌 규정을 더 무겁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음란물 유통만 단죄할 게 아니라 미국, 영국처럼 제작 단계부터 처벌하는 사례도 참고하길 바란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가담한 이들 중 상당수는 중학생 등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고 한다. 인터넷 이용이 보편화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무섭게 발달하는 요즘 촉법소년 기준 연령의 하향도 검토할 만하다.

‘사촌방’, ‘지인방’, ‘여군방’ 등 온갖 이름의 딥페이크 불법 합성방이 난무하는 가운데 ‘기자방’까지 생겼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운영자들은 “기자들도 당해봐야 헛소리 작작 쓰지”라며 딥페이크 범죄에 관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을 협박했다고 한다. 여성 기자를 겨냥해선 “예쁜 분들 위주로 이름, 회사 같이 알려 달라” 같은 글도 올렸다고 하니 언론의 자유와 그 감시 기능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검경을 비롯한 관계 당국은 딥페이크 범죄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수사에 임하길 바란다.

왜 유독 한국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미국의 사이버 보안업체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류 확산의 부작용으로 우리 가수와 배우 등 연예인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당정은 이번 대책 발표 이후에도 보완책 마련 등을 통해 한국인의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