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자 입장에서 수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파울이 아닌 기술이다.”
유재학(61) KBL 신임 경기본부장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몸싸움에 관대한 판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그는 “심판의 콜로 선수들의 경쟁력 향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그동안 KBL에서는 몸싸움에 관대한 휘슬을 부는 국제농구연맹(FIBA)과 달리 공격하는 선수가 수비와 부딪치기만 해도 디펜스 파울이 선언되는 판정이 적용돼 왔다”며 “이러다 보니 공을 잡은 선수에게 수비가 붙으면 좋은 스텝이나 뛰어난 드리블로 따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충돌을 유도한 뒤 심판을 쳐다보고 항의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니 선수들이 개인기 훈련을 안 하고 수비가 붙었을 때 목소리만 커지는 것”이라며 “이 여파가 결국 국제무대에서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FIBA에서 나오지 않은 콜이 KBL에서 불렸다는 건 비정상”이라고 주장한 유 본부장은 “심판본부장이 된 만큼 정상화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콜에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유 본부장은 “지난 시즌과 달라지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실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틀린 콜이 나와도 10개 구단에 똑같이 틀린 콜이 나올 정도로 공정한 판단을 하는 게 올 시즌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컴퓨터 가드’로 불린 스타플레이어였던 유 본부장은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은 뒤 만 34세였던 1998년 대우 제우스를 이끌며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이 됐다. 이후 23년간 프로농구 사령탑을 지냈다. 특히 울산 현대모비스를 18년간 이끌며 6차례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런 유 본부장은 ‘만 가지 수를 가진 감독’이란 뜻의 ‘만수’로 불렸다.
유 본부장은 “선배들은 나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팀을 이끌었기 때문에 일찍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면서도 “요즘 선수생활이 길어지는 걸 생각하면 일찍 감독이 됐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웃었다. 후배 감독에게 덕담을 건네달라고 요청하자 “요즘 감독들은 선수생활을 오래 해서 노하우가 뛰어나다”며 “스타 출신 감독들이 실패의 부담 속에서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이겨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 본부장은 1257경기에서 724승(533패)의 기록을 남기고 지난해 3월 사령탑 은퇴를 선언했다. 이는 모두 한국 농구 최고 기록이다. 유 본부장은 “실컷 했고, 많은 사랑도 받았기 때문에 떠나는 게 아쉽지 않았다”며 “은퇴 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데 경기본부장 자리 제안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욕을 많이 먹는 자리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있었고, 이제 가족들과 지내기로 했는데 또 돌아가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고민이 많았다”며 “그래도 농구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 수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행정가로 변신한 뒤 농구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심판들과 체력훈련도 해야 하고, 경기 중에 심판이 각각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등 감독일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됐다”며 “감독으로서 새 시즌을 맞을 때와 달리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새로운 설렘이 느껴진다”고 기대했다.
유 본부장은 코트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를 많이 했던 감독 이미지가 남아있다. 이에 유 본부장은 “자주 한 게 아니라 할 때 강하게 해서 그렇지 항의가 많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도 “감독들이 항의하는 걸 이해하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로 테크니컬 파울을 줄 계획”이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