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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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가 인정 않는 마오리 왕, 69세 일기로 별세

英 식민통치 막으려 1858년 최초 추대
이후 자녀가 승계하며 7代 왕조 이어와

뉴질랜드는 영연방 회원국이자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섬기는 나라다. 그런데 이 뉴질랜드에 원주민 마오리족을 대표하는 왕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2006년 즉위한 제7대 마오리 왕 투헤이티아 파키(1955∼2024)의 별세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

 

30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마오리 왕 투헤이티아 파키는 이날 부인과 자녀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06년 왕이 된 그는 불과 며칠 전 즉위 18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듯했으나 끝내 타계했다.

제7대 마오리 왕 투헤이티아 파키(1955∼2024).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대표자였다. 게티이미지 제공

마오리 왕이란 직위는 약 170년 전인 18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이 뉴질랜드를 식민지화하려 하자 원주민 마오리족은 강력히 저항했다. 그 일환으로 ‘우리도 왕을 옹립해 근대적인 왕국으로 거듭나자’라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마오리족을 구성하는 여러 부족 대표들이 모여 포타타우 테 페로페로(1858∼1860년 재임)를 초대 왕으로 추대했다. 당시 왕은 부족 지도자들의 선거를 통해 뽑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제로는 초대 왕의 자녀가 왕위를 승계했으며 7대 왕까지 계속 그렇게 했다.

 

다만 뉴질랜드와 영국은 마오리 왕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애초 ‘왕을 추대하자’는 운동에 마오리족 전부가 동의한 것도 아니었다. 역대 왕들은 영국의 뉴질랜드 식민통치에 반대하며 영국 국왕을 상대로 마오리족의 독립을 청원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7대 마오리 왕의 장례 절차는 3일 넘게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세 자녀를 남겼는데 왕위 계승자 발표는 장례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뒤 이뤄질 전망이다. 크리스토퍼 룩슨 뉴질랜드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민에 대한 마오리 왕의 변함없는 헌신 그리고 민족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기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우리나라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영국 국왕 찰스 3세(오른쪽)가 아직 왕세자 신분이던 2015년 뉴질랜드를 방문해 마오리 왕과 선물을 교환하며 활짝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뉴질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자치령을 거쳐 사실상 독립국이 된 뒤 마오리 왕은 뉴질랜드 정부는 물론 영국 왕실과도 대체로 사이좋게 지냈다. 마오리 왕은 2023년 5월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당시 축하 행사 이전에 찰스 3세와 비공개로 독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찰스 3세가 아직 왕세자이던 2015년 부인 카밀라와 함께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에도 만났다.

 

다만 마오리 왕은 2014년 윌리엄 왕자와 부인 케이트의 만남 요청은 거절했다. 영국 왕실과 정부가 짠 윌리엄 왕자 부부의 뉴질랜드 방문 일정 가운데 마오리 왕과의 면담에 고작 60∼90분만 배정된 점을 문제로 삼았다. 당시 그는 “영국 왕실의 귀빈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우리 부족 지도자들이 모이는 데에만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