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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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우리를 살리는 건 극적 탈출 아닌 잘고 꾸준한 구원”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 글도 손으로 쓰는 것이고, 그림도 손으로 그리잖아. 두 개의 손이 서로 연결될 수 있고. 게다가 무언가를 채우거나 지우는 그림의 행위 역시 문학하고 비슷한 지점 아닌가.

 

공을 굴리 듯 여러 이야기를 굴렸다. 다른 형태의 창작물이나 창작자를 살펴보기도 했다. 여러 이야기를 굴리던 어느 날, 단상 하나가 떠올랐다. 문학과 엇비슷해 보이는 그림에 대한 착상이었다고, 소설가 김애란은 기억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전에 썼던 작품과 비슷한 주제로 이어가고 싶었지만, 소설가의 소설은 되지 않았으면 싶었어요. 제 직업으로부터 좀 거리를 두고 싶었거든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둘 다 손을 사용하고 무언가를 지우거나 채우는 행위가 비슷한 그림을 통해서 조금 우회하는 방식으로 써볼 수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인 청소년들이 이야기를 가장 쉽게, 많이 접하는 매체가 웹툰이기에 그림에서 출발하는 게 설득력이 있겠다고.

 

맙소사, 무지개가 온통 검은색이잖아. 집필 과정에서 읽은 캐시 A. 말카오디의 책 『학대받은 아동을 위한 미술치료』(학지사)에 나오는 어린 아이가 그린 무지개는 검은색이었다. 한 번도 무지개가 검은색일 것이라고 상상해 보지 못한 그에게 놀라움과 충격 자체였다. 글도 모르고 말도 못하고 있는 아이가 자신이 겪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다니. 그림이 아름다움과 쾌락에 복무할 수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위로를 주는 수단이 된다면⋯.

 

몇 가지 모티브를 바탕으로 여러 개의 ‘판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 쓰는 도중 자신이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자주 발견됐고, 때론 수정되었으며, 뒤집어지기도 했다.

 

장편 작업은 더뎠다. “여러 번 헤맸고”, 한동안 속도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팬데믹이 이어지던 시기, 가족의 배려로 한동안 집을 떠나 제주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 자리를 타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소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다 됐다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 기쁨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출판사에 원고가 늦어져 많이 미안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산을 넘은 게 아니라 다시 넘어야 할 여러 개의 봉우리가 보였을 때, 아득한 어려움을 느꼈지요.”

 

소설가 김애란이 지우와 채운, 소리 세 고등학생이 함께 또는 각자 인생의 한 시기를 통과해 나가는 이야기를 놀랍도록 서늘하고 치밀하게 그린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의 장편.

 

표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소설 속 담임 교사가 만든 자기소개 게임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개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되 이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시켜 다른 학생들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맞히도록 해 서로를 이해해가는 방식. 작품의 주요 인물인 지우와 채운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지우거나(지우) 채우는(채운) 그림의 행위, 소리는 ‘손’의 느낌에서 유래했다.

 

“지우는 제 속에 해소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았다. 강렬한 경험이지만 여전히 해석이 잘 안 되는 몇몇 기억 때문이었다. 지우는 그걸 이야기로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고, 직접 말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훼손되는 부분이 적은 어떤 마음을.”(82쪽)

 

최근 엄마를 잃고 반려도마뱀 ‘용식’과 살아가는 지우는 1년 전 빌라 옥상에서 목격했던 채운 가족의 ‘그 사건’을 둘러싼 감정이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아서 만화 카페에 「내가 본 것」이라는 제하로 연재하기 시작한다. 지우는 한집에서 산지 3년이 된 엄마의 애인 선호아저씨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독립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용식을 친구 소리에게 맡기고 지방의 노동 현장으로 간다.

 

손을 잡으면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서 늘 펜이나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던 소리는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지우를 기억하고 그의 부탁에 응한다. 역시 엄마를 잃은 소리는 용식을 키우는 것이 재미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1년 전 ‘그 일’ 이후 엄마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채운은 우연히 지우의 연재만화를 보게 된 뒤 친구가 그날 밤의 비밀을 아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에 사로잡힌다. 반려견 ‘뭉치’의 앞발을 잡은 소리가 “앞으로 뭉치랑 많이 놀아주라”는 말을 들었던 채운은 얼마 뒤 뭉치가 죽자 소리가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고 소리를 찾아가 입원한 아버지를 봐달라고 부탁하는데.

 

각자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지우와 소리, 채운 세 사람은 서로의 상처와 비밀을 엿본 후 호감을 비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면서 우정과 거짓말, 그림과 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특히, 지우의 만화가 삽입돼 극적 재미와 함께 세 친구의 상처와 비밀이 연결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이제 나는 네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아.”(182쪽)

 

소설의 주요 시간대는 고교 2학년에서 고교 3학년으로 넘어가는 두 달 남짓한 겨울방학이지만, 세 아이의 시점을 오고가면서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을 통해 세 사람의 안타까운 과거와, 씁쓸한 현재는 물론, 쉽지 않을,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게 한다.

 

‘1980년대 작가들의 기수’ 김애란은 왜 다시 청소년 이야기를 써야 했을까. 그가 상상하고 그린 청소년들과 가족, 성장, 비밀과 거짓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까. 김 작가를 8월21일 기자간담회와, 다음날 전화통화로 만났다.

―13년만의 장편소설 출간인데.

 

“13년 만에 장편이라고 하지만, 실제 구상과 집필 기간은 3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그 사이에 단편 작업도 병행했다. 문예지에 다른 장편을 연재한 것도 있었지만, 준비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시작했구나 싶어서 (연재를) 중단했다. 이야기 본연의 재미를 주겠어, 라는 의욕이 앞서서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구나, 라는 후회가 들었다. 어떻게 살려볼까 하다가 못 살렸고, 그렇게 버린 시간도 있었다. 제가 장편과 단편을 잘 병행하지 못해서 결국 두 개 모두 늦어진 것 같다. 단편의 경우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발표해 머지않은 시기에 단편집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쓰는 시간 외에 헤멘 시간, 버린 시간도 있었다. 낭비라기보다 제가 치러야 했을 ‘차비’, 새롭게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다섯 개의 진술 가운데 하나는 거짓’이라는 자기소개 게임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주 유명하거나 많은 사람이 하진 않지만, 원래 있는 게임이다. 교사인 언니로부터 가끔 학기 초에 학생들과 게임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소설 속 장치로도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과 거짓말이 흥미를 배가시키는 소설적 장치로 활용돼 인상적이었다.

 

“비밀과 거짓말은 이야기의 이야기성을 강화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구라는 말보다 거짓말이라는 말이 더 크다고, 소설 혹은 픽션, 웹툰보다 거짓말이라는 말이 훨씬 큰 말이고 넓은 괄호여서 여러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허구의 픽션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적인 거짓말,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 혹은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하는 거짓말 등도 포함하고 싶었다. 비밀을 보호해 주는 수단, 혹은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었다.(이야기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꾸몄지만, 그렇다고 소설 혹은 이야기,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만, 동시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는 사실도 함께 다루고 싶었다. 미술은 자기 정화 효과가 있고 때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구현해 주지만 쉽게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는다는 문장이 미술 책자에 쓰여 있기도 했다. 이야기 혹은 문학에 대한 제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작품에서 특별히 더 애정이 가거나 공을 들인 인물이 있다면.

 

“세 친구 모두 마음이 간다. 다만, 애정이라기보다는 좀 더 안타까운 인물은 채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두 인물에 비해 어떤 면에서 작은 ‘죄’가 있다. 어떻게 풀어가며 살 건지 밝히지 않고 끝나지만, 아무래도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자기 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살아갈 것 같다. 그 시간들을 가늠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완전무결한 인물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보통 사람들과 가깝고 작가로서도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성인 혹은 사람들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큰 잘못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비밀이나 문제를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소리는 죽은 사람을 미리 알아보기도 하는데) 저는 단편에는 현실적 이야기를 많이 넣고, 장편의 경우 약간의 환상 요소를 넣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번 작품에서 죽을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소리가 등장한 장면이 그렇다. 다만 소리의 환상이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 때문에 겪게 되는 형식으로 구현했다.”

 

―“삶은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투성이” “삶은 가차 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것(작가의 말)이라는 비관적 세계관이 인상적이다.

 

“상처라는 것은 특별히 운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삶의 기본 조건, 기본 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무언가 잃어가면서 살게 된다. 관계를 잃기도 하고, 재물을 잃기도 하고,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조차 젊음을 잃어간다. 특별히 애호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기본 조건, 기본 값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썼다. 다만, 대응하는 방식은 시기별로 좀 달랐던 것 같다. 초기에는 농담이나 유머 환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면, 어느 순간 농담이 불가능한 고통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조금 더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도 썼다가, 또 어느 시기 또는 어떤 이야기에선 제가 사랑하는 소설의 도구들을 다시 들여오는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

 

―왜 다시 청소년 이야기로 돌아온 것인가.

 

“두 번째 장편이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장편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오랫동안 궁금해 했던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 이를테면, 이야기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이야기 속에 사는가, 압도적인 기존 서사에 달리 왜 자기만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가 등등.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어떤 주제, 같은 이야기를 긴 시간에 걸쳐 여러 번 변주해 반복하고 또 음미하는 것 같다. 이번 장편도 첫 장편의 다크 버전이라고 까진 할 수 없어도 가족 혹은 성장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이해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이전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 첫 장편을 쓸 당시는 젊은 나이여서 부모를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려고 하는 청소년이 등장했다. 아마 몸이 아프기 때문에 더 부모에게 죄송한 마음이 커서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인물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굳이 그렇게 어른을 이해해 주지 않으려고 해도 되는데.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도 벅찼을 텐데. 젊은 시절이라 그렇게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방황하는 것이나, 그 방황을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해석하고 꾸려나가려고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기성세대가 돼 청소년을 그릴 때에는 곁에 있는 어른들의 위치가 좀 달라졌다. 이 친구들한테, 아주 적극적 구원은 아니더라도, 희미한 용기나 약간의 디딤돌이라도 돼줄 수 있는 어른들을 조금은 두고 싶었다. 물론 모자라고 폭력적인 어른들도 등장한다. 아울러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조금 변한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의미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첫 장편에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바탕으로 인물을 구성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반드시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는 ‘유사 가족’, 혹은 인간이 아니더라도 사람 못지않게 친밀감을 주는 동물들도 함께 등장시켰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피로 연결된 끈끈한 정의 힘이 강한 사회였고, 또 그런 이야기도 많았다. 저 또한 그런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때로는 끈적끈적함과 정이 건강하지 못하게 작용할 때도 있고, 심지어 끔찍하게 작용할 때도 있는 것 같다. 특히 폭력이 일어나는 장소로서 가족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적으로 4인 가족 모델, 혹은 다인 가족 모델은 무너진 지 오래다. 사회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어려운 순간 힘이 돼 주는 반려동물이나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아저씨 역시 이젠 가족의 이름으로 불려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써봤다.”

 

―성장의 의미 역시 일상과 다르게 사용된 것 같다.

 

“작품을 쓰면서 성장의 의미를 좀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다.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는 되지 않았으면 싶었다. 자신이 더 커지거나 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쩌면 시점 바꾸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의 자리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고통만큼 다른 사람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밟아가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어떤 욕망을 가진 인물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다시 노력해 성취하는 일반 구조와는 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시와 소설을 읽고 문장을 배우던 국어 시간이 너무 좋았다. 재밌고, 그래서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국어 시간이 기다려지고 좋으니까 직업도 이쪽으로 구해볼까. 출판사 편집자도 좋고, 신문 기자나 국어 선생님도 좋고. 어느 쪽이든 좋으니 활자 근처에, 그냥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직업 근처에 있다면⋯.

 

인천에서 태어난 뒤 서산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때, 책을 한 권 사려고 하면 시내로 나가야 했다. 시골 마을이어서 서점도 하나 없었고, 도서관 역시 없었다. 모두 시내로 가야 했다. 책을 사러 시내에 간다고 하면, 어머니는 그냥 용돈을 주셨다. 어머니는 사는 것이 바빠서인지 무슨 책을 살 것인지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 형제자매끼리 시내에 나가서 마음대로 책을 골라 사던 흑백 기억이 남아 있다.

 

“인천에서의 저를 떠올리면 갓 태어나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아기가 그려지고요, 충남(서산)에서의 저를 생각하면 그보다 적극적인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며 ‘오늘은 뭐 재밌는 일 없나?’ 궁리하는 어린이가 떠오릅니다.”(문학동네, 「코멘터리 북」)

 

어려서부터 말과 이야기를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때나 중고 시절 내내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다. 작은 동네여서 독서나 글쓰기, 공부에서 조금만 잘해도 주위에서 격려해 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리거나 또는 젊은 그가 좋아한 단어는 ‘바람’이었다. 그네를 타면서 힘차게 발을 굴렀을 때 발과 바지 사이로 스며들던 바람, 그러다가 손을 놓고 싶을 때면 얼굴로 확 달려들던 바람, 엄마랑 식당 앞에서 맞던 바람⋯.

 

국어 시간이 너무 좋았던 고교생 김애란은 큰 다짐이나 각오라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좋으니 활자 근처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그때만 해도 이런 생각이 그의 직업으로 연결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범대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입학시험을 봤다. 이 과정에서 전형료를 마련하기 위해 글짓기 대회에서 상품으로 받은 워크맨을 팔았다는 일화는 알려져 있다. 아무튼, 결과는 합격. 연극원에 들어간 이후 문학에 대한 그의 마음은 점점 강해졌고, 대학 강의와, 책들과, 동료들 속에서 문학적 자양분이라 할 만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소설가 김애란의 원점이었다.

 

1980년 인천에서 목소리 크고 일 잘하는 어머니와 말수 적고 노래 잘하는 아버지의 셋째 딸로 태어나고, 충남 서산에서 자란 김애란은 대학 재학 중인 2002년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을 발표했다.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소개해 준다면.

 

“크게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 하나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가족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면서 써왔다. 둘째는, 주로 거주공간이나 생활공간, 혹은 사회 공간, 동시대인들의 거주 형태인 방이나 집 이야기를 그릇 삼아서 그려왔던 것 같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대한 관심으로도 변하면서 『두근두근 내 인생』 같은 장편을 썼다.”

 

―변주하는 방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단편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두 번 혹은 세 번 쓰는 방식을 좋아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나 썼으면 시간이 좀 지나서 그것의 다크 버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쓴 걸 사후적으로 깨달았다. 예를 들면, 모성의 건강함이나 새끼를 먹이는 일에 지난함, 혹은 미덕에 대해 단편 「칼자국」을 썼지만, 나이를 좀 먹고 「가리는 손」이라는 다크 버전으로 다시 썼다. 새끼를 먹이는 끔찍함, 혹은 가족 중심주의를 조금 뒤집어 다시 쓰는 경험을 했다. 「칼자국」은 칼국수 집을 하는 생활력이 강한 엄마에 대해 그렸다. 어릴 때 비가 내려도 학교 앞에 오지 않고 점심 장사를 했던 엄마에게 서운함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나보다 손님이 더 소중한가.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커다랗고 검은 개를 만나서 크게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울음소리에 엄마가 가게에서 50~100미터 떨어졌을 그 거리로 식칼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나오셨다. 나이가 들어서 엄마에 복잡한 감정이 들거나 서운한 감정이 들 때 그때 칼을 들고 뛰어나와 줬던 엄마를 떠올리면 서운한 마음이 좀 덜 든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칼자국」에 그렸다. 나이를 먹고 최근 아픈 부모, 혹은 간병 관련 단편들을 쓰고 있다. 이제는 제가 부모 앞에서 칼을 들고 검은 개를 쫓아줘야 되는 상황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론 우리가 서로에게 검은 개가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소설을 쓴 지 벌써 23년이 됐다니.

 

“에너지의 양이 아니라 에너지 종류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화력발전소에서 수력 발전소로 바뀐 느낌이랄까. 이전에는 제가 어떤 경험이나 기억을 태워서 그 에너지로 글을 썼다면, 이제는 낙차를 이용하는 수력발전소처럼 경험에 시차나 위치 변화를 에너지 삼아 이야기를 쓰는 기분이 든다. ‘운동 에너지’보다는 ‘위치 에너지’에 더 집중하게 된다. 함께 일하는 분들의 얼굴이 신인 때보다 더 잘 보이게 됐다. 예전에는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려서 추상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얼굴, 일의 얼굴이 더 잘 보이게 됐다. 이런 자리나 문학 행사에 참여할 때도 예전에는 독창을 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합창을 하는 기분이다.”

 

―소설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가.

 

“어릴 때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준 원초적 즐거움, 몰입감, 이야기성이 갖는 미덕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질문도 함께 던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한다. 동시대적 사건을 다룰 때는 잘 쓰거나 아름답게 쓰지는 않아도 어떻게 하면 정중하게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좋은 소설이란) 다음 독서를 촉발하는 책은 다 좋은 책 같고, 그 와중에 의미 있는 질문들이나 어떤 주제와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조카가 어렸을 때 부모가 안 사준 책을, 아이가 읽기에 좀 강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러운 책을, 그렇지만 조카가 원해 목록을 몰래 적어준 책을 사준 적이 있다. 조카가 나중에 컸을 때, 우리 이모가 어렸을 때 나랑 비밀과 금기를 나눴지, 그 안에서 안전하게 모험을 할 수 있었지, 라고 생각할 것 같다.”

 

마치 앞머리로 고양이를 닮은 눈빛을 가리려는 듯, 그는 기자간담회 내내 단정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모든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치 교열을 보듯 단어와 문장을 고르듯,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전화 통화에서도 이러한 자세는 이어졌다.

 

루틴을 잘 지키는 동료들을 보면 부러울 정도로 자신의 루틴은 불규칙하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낮에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마감 때가 되면 자주 낮밤이 바뀌기도 한다고. 여기에 직업인이기 전에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 감당해야 하는 일상도 병행한다고.

 

그럼에도 마치 운동선수가 근육을 기르듯, 김애란은 창작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집필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일어나면 먼저 음악을 듣거나 활자랑 친해지려고 하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오래지 않더라도 뭔가를 읽고 꾸준히 메모하고. 기사를 보든, 책을 읽든, 어떤 콘텐츠를 보든⋯. 구원이란 결국 극적 탈출이 아니라 아주 잘고 꾸준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지우는 ‘때로 가장 좋은 구원은 상대가 모르게 상대를 구하는 것’임을 천천히 배워 나갔다. 실제로 그 시절 지우는 용식 덕분에 그나마 한 시절을 가까스로 건널 수 있었다. 용식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극적인 탈출이 아닌 아주 잘고 꾸준하게 일어난 구원. 상대가 나를 살린 줄도 모른 채 살아낸 날들.”(202~203쪽)

 

*참고문헌

―오은 신연선, 「오은의 옹기종기(96회) 김애인 작가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예스24 채널예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