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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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물 유포해도 중1은 처벌 면제?…다시 촉발된 ‘촉법소년’ 논란 [지금 교실은]

최근 교사나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에서의 딥페이크(Deep Fake·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 합성물)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촉법소년’ 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가해자 중 10대가 상당수란 것이 알려지면서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연령’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정부가 딥페이크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이번 기회에 촉법소년 제도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가해자 10명 중 7명 미성년자

 

31일 국회 행정위원회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허위영상물 범죄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중 1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5.8%에 달했다. 올해 1∼7월 입건된 가해자 중에서도 73.6%가 미성년자였다. 최근 3년간 접수된 피해자(527명) 중에서도 10대가 59.8%를 차지했다. 10대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많은 셈이다.

 

실제 최근 학교에서는 10대 학생의 딥페이크 범죄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경남의 한 중학교에서는 남학생 6명이 인근 4개 학교 또래 여학생 12명의 합성사진을 만들어 텔레그램으로 공유했다가 적발됐고, 부산에서도 중학생 4명이 학생 18명의 얼굴에 신체 이미지 사진을 합성한 사진 80여장을 만들어 채팅방에서 공유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10대에게 딥페이크 범죄가 깊숙이 스며든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이용 빈도가 높고 신기술 활용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특히 10대 초중반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행위가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경기의 한 중학교 교사는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경우가 많다.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고 ‘장난삼아’ 불법 성적 합성물을 만드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라며 “최근 딥페이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오히려 뉴스에서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볼까’란 호기심을 갖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살인·성폭행도 처벌 안 받는 촉법소년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어 적발되는 중학생 중에는 촉법소년도 적지 않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청소년’으로, 생일이 지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생일이 지나지 않은 중학교 2학년까지 포함된다. 촉법소년은 그 어떤 범법행위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범죄기록도 남지 않는다.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감호 위탁∼ 2년 이하 소년원 송치)만 가능하다. 만 10세 미만 어린이(범법소년)의 경우 보호처분도 하지 않는다.

 

촉법소년 제도의 취지는 ‘교화’다. 14세 미만은 미성숙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잘못을 처벌하기보다 행동을 교정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나오면서 오히려 촉법소년 제도가 청소년의 범죄를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노려 범죄를 저지르는 등 ‘면책권’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또 특수강도나 성폭행,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많다. 올해 5월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중학생이 길 가던 8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붙잡혔으나 촉법소년이어서 형사처벌을 피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촉법소년은 1만9654명으로 4년 전(8615명)의 두배가 넘었고, 성폭력, 살인을 저지른 촉법소년도 전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 자녀가 있는 학부모 B씨는 “경범죄면 실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범죄나 피해자의 피해가 큰 심각한 범죄는 어리다고 봐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초등학생이면 몰라도 중학교 1·2학년 정도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 촉법소년 제도는 오히려 애들한테 봐준다며 범죄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기회에 촉법소년 문제도 논의해봐야”

 

정치권이나 교육계에선 오래전부터 기준 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반대 목소리도 있어 지금껏 관련 논의에 힘이 실리진 못했다. 법무부는 2022년 촉법소년 나이 기준을 만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나 끝내 국회 문턱은 못 넘었다.

 

당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학계·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촉법소년 연령 하한은) 정확한 통계와 실태분석에 따른 정책적 숙고 없이 부정적 여론에 편승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처벌 확대가 소년범죄 발생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딥페이크 논란을 계기로 촉법소년 연령 하한 논의가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산한 것과 관련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도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그거(딥페이크 범죄 영상 제작) 하는 분, 하고 싶어 하는 분 중 촉법소년 연령에 있는 분도 많을 것”이라며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번 국회에서 지난 국회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촉법소년 연령 하향 같은 국민 여망이 큰 제도도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일 때도 촉법소년 연령 하한 법을 추진한 바 있다.

 

최근 교육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학교 딥페이크 대응 긴급 전담 조직(TF)’을 만드는 등 학교 딥페이크 범죄 근절에 팔을 걷어붙인 교육부도 이번 기회에 촉법소년 제도에 대해 논의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달 관계부처 회의 때 촉법소년 연령 하한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최근 딥페이크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딥페이크 가해자가 촉법소년이어서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촉법소년은 학계 입장과 일반적인 국민 정서가 다를 수 있다. 늘 고민하는 영역”이라면서도 “이번 기회에 그 부분까지 논의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