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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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훈장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슬 맺힌 美 노병

1969년 월남전에서 큰 전공 세워
당시엔 제대로 된 평가 받지 못해
55년 만에야 해군십자훈장 수여

베트남 전쟁 당시 큰 공을 세웠으나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다가 55년 만에야 훈장을 받은 미국 전직 해병대원이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 해병대는 과거 전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용맹을 떨친 용사들의 공적을 꾸준히 검토해 나중에라도 훈장을 수여하거나 기존 훈장의 훈격을 올려주고 있다.

 

31일 미 해병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에릭 스미스 해병대사령관(대장)은 지난 28일 월남전 참전용사 대니얼 헬러(당시 계급 상병)에게 해군십자훈장(Navy Cross)을 수여했다. 이는 해군·해병대에서 훈격이 가장 높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 바로 다음가는 훈장이다.

 

에릭 스미스 미국 해병대사령관(왼쪽)이 지난 28일 월남전 참전용사 대니얼 헬러(당시 계급 상병)에게 뒤늦은 해군십자훈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미 해병대 홈페이지

헬러가 속한 소대는 1969년 2월13일 월남의 작전 구역 내 협곡을 순찰하던 중 매복하고 있던 북베트남군 병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기습을 당한 미군 장병들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헬러 또한 다쳤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동료 및 부하 해병들을 규합했다. 헬러와 소대원들은 월맹군의 공격을 피할 만한 장소로 옮긴 뒤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헬러는 적군의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가운데 상처를 입고 쓰러진 해병 2명을 구조해 아군에 넘겼다. 이어 그들이 후송되는 동안 거의 혼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동료들이 헬러의 몸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후송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마침내 미군은 월맹군의 매복을 뚫고 무사히 진지로 귀환했다.

 

월남전 도중인 1969년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미국 전직 해병대원 대니얼 헬러가 지난 28일 해병대로부터 55년 만에야 해군십자훈장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미 해병대 홈페이지

해병대는 헬러의 공적을 인정해 작은 훈장을 주었으나 그가 발휘한 용기에 비하면 훈격이 너무나 낮았다. 동료 부대원은 물론 헬러의 지인들까지 나서 해병대에 꾸준히 이의를 제기했다. 해병대는 최근 이를 시정하기로 하고 헬러의 공적을 면밀히 재심사한 끝에 기존 훈장보다 훈격이 훨씬 높은 해군십자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스미스 사령관은 이제는 노인이 된 헬러에게 훈장을 전달하며 “그날 대니얼 헬러 상병의 행동은 놀라웠다”며 “이제 우리는 그가 거의 60년 전에 받았어야 마땅한 인정을 비로소 드린다”고 말했다.

 

헬러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으나 그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러면서 “나는 해군십자훈장을 받으려고 그 일을 한 것은 아니다”라며 “솔직히 그런 훈장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헬러는 “비록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왔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며 “가족과 여기 계신 모든 이웃, 친구 그리고 미 해병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