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가 문을 밀고 들어서면 ‘100년에 하나 나오는 미녀’ 황신혜와 ‘배우의 대명사’ 안성기의 리즈시절 얼굴 사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대표 사진작가 구본창이 포착한 ‘인생샷’으로,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찍던 때의 모습이다.
옆 벽면에 걸린, ‘젊은 남자’(1994) 촬영 무렵 윗몸을 벗은 이정재 사진 앞에서는 관객들이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25장으로 이루어진 대형 흑백 사진은 구 작가가 유독 공들여 제작한 작품이다. 사진 위에 적힌 ‘청춘이 돈이 없지 꿈이 없나?’라는 문구는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이정재는 데뷔작인 ‘젊은 남자’로 그 해 주요 영화제의 신인상을 모조리 휩쓸었다.
강수연과 박중훈이 주연한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스틸컷도 관객을 반긴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사진 속 강수연은 여전히 앳된 미소를 머금고 있다.
‘경마장 가는 길’(1991)과 ‘종이꽃’(2020)의 인상 깊은 장면들도 눈길을 끈다.
구 작가의 사진전이 ‘구본창의 작은 영화관’이란 문패를 달고 9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픽처하우스’에서 열린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영화관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픽처하우스가 갤러리 융합형 상영관이기 때문이다.
픽처하우스는 영화와 관련있는 미술을 전시 주제로 삼는다. 영화 포스터를 한 데 모으거나 촬영 현장을 기록한 사진전, 화가를 겸업하는 배우들의 미술 작품과 출연 영화를 함께 소개한다. 일반 예술영화상영관과는 또다른 성격이다. 작지만 아트홀 기능을 하는 상영관으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크린도 때론 전시벽이 된다. 상영관 바깥의 전시벽과 스크린을 연계해 미디어아트를 전개할 수도 있다.
이같은 공간을 꾸민 이는 전도연과 이정재, 윤여정, 서우 등이 열연한 영화 ‘하녀’(2010)의 제작자로도 유명한 미로비전의 채희승 대표다. “영화와 미술 등의 문화를 ‘주체’가 되어 제대로 당당히 즐겨보자”는 뜻에서 마련한 것이다.
“59석의 작은 규모지만 동호인 모임 장소로 쓰기에도 적당합니다. 극장가에 내걸리는 영화를 수동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보면서 공감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요. 모여서 얘길 나누며 감동을 공유하는거죠. ···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떠나버린 관객들이 영화관에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특히 MZ세대 관객들은 영화관 대신 갤러리를 찾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꺼리’들을 얻기 수월해서죠. 비용절감 효과도 크구요. ··· 생각을 바꿔 본 겁니다. 영화만 보여주는 전형적 상영관을 벗어나 문화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
픽처하우스 자리는 영화 시사회를 자주 진행하던 이봄씨어터가 있던 곳이다. 이전에는 허리우드현상소의 시사실이었다.
“필름시대가 막을 내리자 문을 닫았던거죠. 현상소의 시사실로 쓰였던만큼 사운드 시설이 좋은 것은 장점이예요. 지금도 기술 시사나 모니터 시사를 많이 합니다. 프로포즈 장소로도 인기가 높아요. 박수 쳐줄 친구들을 뒷자리에 미리 배치해놓고 영화가 끝난 뒤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순간 청혼하는 경우도 봤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