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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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와 비교하고 싶다" 강간 살인범 온보현…같은 날 교수형

훔친 택시로 여성 6명 납치…2명 살해후 암매장[사건속 오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범행 동기… 홍준표 검사, 검증 지휘
1994년 9월 29일 연쇄강간 살인법 온보현에 대한 현장검증을 지휘한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 검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MBC 갈무리) ⓒ 뉴스1

홍준표 대구시장은 인지도 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가 맨 처음 얼굴을 대중에게 알린 건 연쇄 강간 살인범 온보현(1957년생) 때문이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였던 홍 시장은 1994년 9월 29일 온보현을 경북 금릉군 아포면,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등지로 데리고 다니며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6명의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1명 미수)한 뒤 이 중 2명을 살해한 온보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워낙 높아 모든 방송, 신문사들이 취재에 뛰어들었고 홍준표 검사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당시 홍 검사는 "(온보현의) 심성이 황폐해진 원인을 나중에 검찰에서 확인해 봐야 한다"며 '심성 황폐'라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표현을 해 주목을 끌었다.

 

이듬해 1월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 실존 모델로 유명해진(모래시계 검사) 홍 검사는 1년 뒤부터 정치인으로 변신, 지금까지 28년간 특유의 화술을 구사하면서 정치권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온보현은 몇가지 면에서 이야기거리를 남긴 흉악범이다.

 

범행의 악질성, 신속한 재판, 1심 사형선고 1년 만에 형집행 등이 그것이다.

 

◇ 1994년 9월 1일 온보현, 노래방 여주인 납치 성폭행

 

온보현은 1994년 9월 1일 새벽 1시쯤 서울 송파구 백제 고분로에서 막 영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A 씨(41)를 훔친 스텔라 택시에 태웠다.

 

온보현은 A 씨 집 방향과는 반대인 구리-안산 고속도로로 가 도로 편에 차를 세운 뒤 성폭행했다.

 

A 씨를 위협해 현금과 수표 등 1200만 원을 강탈한 온은 A 씨를 다시 택시에 태워 자신의 고향인 전국 김제군 금구면 선암리 야산으로 갔다.

 

오전 10시쯤 미리 파놓은 구덩이 옆에서 한 차례 더 성폭행한 뒤 온은 A 씨를 결박하고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 온보현 잠든 틈에 탈출한 피해자, 인근 공사장 인부에게 '살려달라'

 

A 씨는 온보현이 인근 숲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 틈을 이용해 탈출, 인근 공사장 인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잠에서 깬 온은 A 씨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 동태를 살폈다.

 

출동한 경찰이 A 씨의 말에 따라 스텔라 택시를 압수해 가는 것을 본 온보현은 그길로 산을 내려워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도주했다.

 

1994년 9월 29일 연쇄강간 살인법 온보현에 대한 현장검증을 지휘한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 검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MBC 갈무리) ⓒ 뉴스1

◇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행 결심…범행일지, 도구 등 준비

 

온보현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학대하고 자신을 때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슴 한쪽에 차곡차곡 채워두고 있었다.

 

27살이던 1984년 8월 13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아버지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1994년 8월 13일 어머니 10주기를 맞아 고향에 내려온 온보현은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자 격분, '내 손으로 어머니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해 인근 야산으로 올라가 구덩이를 팠다. 아버지를 해친 뒤 묻을 생각으로.

 

이어 서울로 올라와 범행일지를 적을 수첩, 망치, 시너, 테이프 등을 구입했다.

 

◇ 택시 기사로 일한 경험 살려 택시 훔쳐…위조 번호판 단 뒤 아버지 아닌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1979년부터 1년여 택시 운전을 했던 온보현은 외곽 택시 회사 주차장에 키를 꽂아 놓은 채 택시가 주차돼 있다는 사실을 이용, 강북구 수유리 택시회사 차고지에서 택시를 훔쳤다.

 

이어 택시 도난 신고에 따른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다른 회사 택시 번호판에 납판을 대고 문질러 만든 위조 번호판을 달았다.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는 온보현은 전혀 관계없는 여성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말았다.

 

◇ 1994년 8월 28일 여대생 납치…성폭행하려다 실패

 

온보현은 1994년 8월 28일 이른 아침,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00대학으로 가 주세요'라는 여대생 B 씨를 태워 학교가 아닌 영동고속도로 갔다.

 

이천 부근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온은 학생증을 뺏은 뒤 B 씨를 위협 풀 속으로 데려가려 했다. 이때 B 씨가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살려 달라'고 외치면서 언덕 넘어 도망쳤다.

 

온보현은 날이 밝아 와 B 씨 뒤를 쫓는 일을 포기하고 택시를 몰고 서울로 들어왔다.

 

◇ 9월 11일 두 번째 성폭행…12일 세 번째 성폭행 그리고 첫 살인

 

또 다른 택시를 훔친 온보현은 9월 11일 밤 8시50분쯤 서울 독산동에서 호텔 종업원 C 씨(21)를 태운 뒤 강원도 횡성군으로 야산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온보현이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C 씨를 나무에 묶어 놓고 서울로 가는 바람에 C 씨는 목숨을 건졌다.

 

9월 12일 온보현의 첫 희생자가 나왔다.

 

밤 9시 무렵 서초구 포스코빌딩 앞에서 D 씨(26)를 태운 온보현은 C 씨를 결박했던 횡성 야산으로 데려갔다.

 

C 씨가 탈출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온보현은 D 씨를 협박해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신갈 야산으로 끌고가 무차별 폭행, 숨지게 했다.

 

D 씨 시신을 범행장소 인근에 버린 온보현은 곧장 서울로 가 D 씨 카드로 현금 61만 원을 인출했다.

 

◇ 소녀 가장이라는 말에 집까지 데려다주기도…특수학교 교사는 끝내 살해

 

온보현은 9월 13일 19살 E 씨를 강동구 천호동에서 같은 방법으로 납치, 경북 김천시에서 성폭행했다.

 

그 과정에서 E 씨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동생을 책임지고 있는 소녀 가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E 씨를 고덕동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반면 9월 14일 경기도 일산에서 납치한 특수학교 교사 F 씨는 심하게 반항한다며 흉기로 난자해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온보현은 손에 자상을 입었다.

 

F 씨 시신을 경북 금릉군 아포면 경부고속도로 비상활주로 인근에 버리고 서울 천호동 여관에 은신했다.

 

◇ 택시 기사 전수조사· 은행 CCTV, 온보현 범인 특정…지존파로 강력범죄 수사 강화

 

 

 

경찰은 9월 1일 A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 스텔라 택시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범인이 택시 회사 사정에 밝다는 점에 착안, 5년간 수유리 일대 택시회사에서 근무한 택시 기사에 대해 전수조사를 펼쳐 A 씨로부터 온보현이 범인이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D 씨 가족의 실종신고를 수사한 경찰은 9월 12일 밤 온보현이 D 씨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때 CCTV에 찍힌 사진을 이용, 전국에 그를 지명수배했다.

 

여기에 5명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지존파 일당이 9월 20일, 경찰에 체포된 뒤 강력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 경찰이 수사 인력을 총동원해 강력 사건 해결에 나선 것이 온보현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 온보현 경찰에 자수…1· 2심 모두 사형선고

 

천호동 여관에 은신하면서 손가락 자상 치료를 하던 온보현은 지존파 사건으로 경찰 신경이 곤두선 것에 부담을 느껴 9월 27일, 지존파 일당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경찰에서 온보현은 "지존파와 나를 비교해 보고 싶다"며 "지존파와 같은 감방에 넣어달라"고 큰소리쳤다.

 

지존파가 불어온 충격파가 워낙 큰 탓에 온보현에 대한 수사와 재판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자수한지 1달 4일만인 1994년 10월 31일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11월 14일 서울형사지법 합의 25부(재판장 김주형 부장 판사)도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온보현은 즉각 항소했지만 1995년 2월 24일 서울고법 역시 사형을 선고하자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됐다.

 

온보현은 "한번 비교하고 싶다"던 지존파 일당 6명 등 사형수 19명과 함께 1995년 11월 2일 교수형에 처해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