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심호섭의전쟁이야기] ‘완벽한’ 슐리펜계획의 실패

20세기는 전쟁으로 점철된 세기였다. 그 시작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차대전이었으며, 이는 이후 2차대전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1차대전 전, 유럽의 강대국들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고, 과학적 진보와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는 나아가 인간이 국가 간의 모든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군대가 국가의 중심이라는 전통을 지니고, 오스트리아에 이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독일을 통일한 독일제국에서 두드러졌다.

슐리펜계획. 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비스마르크의 동맹정책이 그의 실각 이후 무너지면서 독일은 양면전쟁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독일군 수뇌부는 정치적 해결책 대신 군사적 해결책만을 모색했으며, 슐리펜 참모총장은 먼저 프랑스를 무너뜨리고 러시아와 전쟁하고자 했다. 이른바 ‘슐리펜계획’은 프랑스를 6주 안에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병력을 우익에 7:1의 비율로 과감하게 집중하여, 좌익이 알자스·로렌 방면에서 프랑스군 주력을 유인하거나 고착시키는 동안, 우익 병력이 벨기에 방면으로 대규모 우회 기동을 하여 프랑스군을 6주 안에 포위·섬멸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슐리펜계획을 실행한 일명 소(小) 몰트케 참모총장이 병력 배치를 수정하며 원안보다 포위 기동을 하는 우익 부대의 공격 강도를 약화했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벨기에의 저항, 철로 및 교량의 파괴, 러시아의 빠른 동원, 영국의 참전, 프랑스군의 반격, 독일군의 보급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슐리펜계획은 실패했고, 서부전선은 마른 전투를 기점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쟁은 참호전으로 이어졌고, 4년간의 소모전 끝에 독일제국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슐리펜계획의 실패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계획하고 통제한 전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이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간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결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슐리펜계획은 문제를 해결할 다른 수단들과 전쟁의 변수와 우연성을 배제했고,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 실패는 필연이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