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드레스 스타일이 국제적 관심사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여성은 어떤 옷차림으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보여주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전당대회 마지막 날 짙은 청색의 바지 정장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런 옷차림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미국에서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많은 여성은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 대표적으로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입었던 옷 색깔이다. 원래 하얀 옷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의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들의 상징적 드레스다. 여성의 정치 참여로 민주주의를 완성하려는 주자들의 당연한 색상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해리스는 이런 전통을 깨고 남성 정치인의 일반적 색상인 진한 파란색 옷을 차려입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프랑스의 르 몽드가 지적하듯 여성으로서 대선 주자에 나선다기보다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대권에 도전한다는 이미지를 실은 셈이다. 여성 정치인 특유의 차림을 강조하기보다 남녀를 떠나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 전략 말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화려한 나비 무늬에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흑인 전형의 헤어스타일로 인종과 성별의 특성을 마음껏 드러낸 모습과 대비된다. 미셸 오바마는 대통령 부인일 때는 이런 과감함이나 인종 특성을 피하곤 했다.
해리스는 이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이나 유색인종으로서 대권에 도전한다기보다 능력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보통 정치인으로 나선다는 점을 강조했다. 옷으로 보여주었던 선거 전략을 말로 확인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남성 정치인들이 즐겨 입는 짙은 색 정장의 전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술관의 왕이나 귀족의 초상화에서 쉽게 발견하듯 유럽 권력자의 드레스는 붉은색, 보라색 등 화려함의 극치에 달했고 가발에 화장, 실크 스타킹 등 사치와 멋을 뽐내는 데 열중이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부르주아 시민을 대표하는 제3 신분의 의원들이 사치스러운 귀족이나 성직자와는 달리 검은색 옷으로 검소하게 차려입고 삼부회의에 등장한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유럽 권력 집단을 지배했던 프랑스 베르사유풍의 드레스 코드는 혁명과 함께 사라지고 점차 영국이 주도하는 짙은 색 정장이 근대 세계의 권력 상징으로 부상했다. 런던풍의 드레스 코드란 도시 일상에서는 흑색, 회색, 짙은 청색을 입고, 시골에 가면 녹색이나 갈색을 입을 수도 있으며 빨강, 연두색, 하늘색 등 다른 색상은 ‘젠틀맨’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전통이다.
200여년 전 근대적 정장의 존재 이유는 검소함과 간편함이었다. 가발이나 스타킹, 화장을 던져버리고 짙은 색 유니폼과 같은 기능적 옷으로 갈아입는 혁신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 이제는 넥타이나 구두도 던져버리고 티셔츠와 반바지, 운동화도 일터에 등장하는 21세기다. 물론 대통령 후보는 여전히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어야 하고, 짙은 청색이 적당하다고 여겨지지만 말이다. 해리스의 정장은 프랑스 패션 하우스 클로에의 작품이라고 하니 검소하다는 정장의 원래 의미를 명품 자본주의가 대신하는 듯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