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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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응급실 야간·주말 폐쇄 확산, 안이하게 대응할 때 아냐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전문의들마저 이탈해 운영을 중단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늘고 있어 우려스럽다. 건국대 충주병원은 1일부터 주말·공휴일 및 야간(오후 9시∼다음 날 오전 9시)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세종충남대병원도 1일부터 야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고, 강원대병원은 2일부터 야간 성인 진료를 중단했다. 의료공백 사태 동안 일시적으로 응급실 운영을 축소한 병원은 있었지만, 야간, 주말에 아예 응급실을 폐쇄하는 병원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는 응급실 상황에 대한 일일 브리핑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의료현장 상황은 심상찮다. 지방뿐만이 아니라 아주대병원, 이대목동병원 등 수도권 권역 응급의료센터도 주중 하루나 이틀 응급실 운영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응급의료 위기가 수도권까지 번지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119구급대원들은 갈수록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추석을 기점으로 응급진료가 안 되는 질환이 더욱 증가하고 응급실을 닫는 대학 병원이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말대로 응급의료 관리가 정말 가능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비상 진료 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밝힌 건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은 있지만, 진료 유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국민이 체감하는 것과 다르다. 정부는 어제 “군의관 15명을 4일 배치하고, 9일부터 235명의 군의관·공보의를 진료 제한 응급실에 배치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장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필수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더 나와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응급의료 최전방이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의사들이 이런 상황을 방관하면서 ‘의대 증원 철회’ 주장만 되풀이하는 건 실망스럽다. 당초 의사들은 어떤 상황에도 필수의료가 마비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의사들 차원에서 의료공백 위기를 타개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니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정부의 ‘백기 항복’을 노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의사들은 먼저 의료현장으로 복귀한 뒤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