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성악계를 대표하던 전설적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의 마지막 제자인 벤야민 아플(42·바리톤)이 떠올린 스승에 대한 기억이다.
아플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문화예술사업을 클래식 음악 분야로도 확장한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첫 음악회 무대에 오르기 위해 처음 내한했다.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 제목으로 슈베르트(1797∼1828) 역작 ‘겨울나그네’를 들려준다. 독일 가곡(리트) 최고 해석자로 불리는 거장 피셔디스카우가 남긴 ‘겨울나그네’와 비교해 듣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듯하다.
독일 바이에른주 태생인 아플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린 시절 합창단 활동을 했지만 음악가보다는 은행원을 꿈꿨다고 했다. “은행원으로 일하며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던 중 어느 순간 내면과 깊은 대화를 했어요. ‘내 감정을 끄집어낼 시간이 없구나’란 생각에 (은행원 관두고) 음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2008년부터 뮌헨 음대에서 성악 공부를 시작한 그는 2009년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에서 열린 슈베르티아데 마스터클래스에서 피셔디스카우 눈에 띄어 마지막 제자가 됐다. 아플은 피셔디스카우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했지만 단순히 영웅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28살에 선생님을 만나 (2012년 5월) 돌아가시기 3주 전까지 4년 동안 모든 레퍼토리를 함께 작업했어요. 그러면서 발성 기교뿐 아니라 음악 해석, 무대 공포증 탈피 등 음악과 관련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피셔디스카우가 각 음악에 담긴 배경이나 시의 특성, 작곡가 의도 등을 매우 깊이 연구한 뒤 연주회에서 자기 음악을 창조하는 자세를 배운 게 가장 의미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역작 ‘겨울나그네’에 대해 “200년 전 만들어졌지만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는, 엄청난 깊이가 있는 곡”이라며 “시와 음악이 결합된 완벽한 작품이고 독일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 형태”라고 강조했다.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이다. 실연으로 인한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24개 곡에 담겼다. 첫 곡 ‘안녕히’와 다섯 번째 ‘보리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가 잘 알려져 있다.
아플은 “주인공 남자는 내면 깊이까지 내려가는 여행을 떠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24곡에서는 죽음을 비롯해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살핀다”며 “연주자마다 감정과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2022년 영국 BBC의 영화 프로젝트 ‘겨울기행’에 출연해 스위스 알프스에서 90분에 걸쳐 ‘겨울나그네’ 전곡 연주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영국왕립음악원 교수인 피아니스트 사이먼 래퍼와 함께한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앞으로 해마다 양질의 음악 공연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백수미 이사장은 “한국에서 성악 공연은 유명 오페라나 스타 성악가 리사이틀(독주회)에 집중되고,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가곡은 덜 알려져 있다”며 “가곡 위주 공연을 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