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대책’은 마치 ‘결혼과 출산이 힘든 일이니까 국가가 지원해줄게’라는 뉘앙스로 다가오죠. 오히려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결혼 여부, 세대에 상관없이 저출생 대책이 지지를 받으려면 메시지 전달 방식도 중요합니다.”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인구 문제를 연구하는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모리이즈미 리에 선임연구원은 3일 ‘2024년 제1차 한‧일‧중 인구포럼’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를 설명하며 이 같은 진단을 내렸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노동 시장의 변화를 고려해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일‧가정 양립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도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은 이날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동아시아 3국 2030의 사회 인식에 기반한 저출생 정책의 시사점 모색’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일본, 중국의 20·30세대 인식을 들여다보고 정책의 시사점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이들 국가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지난해 기준 한국 0.72명, 일본 1.20명, 중국 1.0명이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최근 일본 저출생의 배경으로 2030 세대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인식은 줄고, 맞벌이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지향은 강화되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8∼34세 미혼 중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남녀 비중은 2015년 각각 12.0%, 8.0%였는데 2021년 17.3%, 14.6%로 급증했다. 이 세대의 희망 자녀 수도 2015년 남녀 각각 1.91명, 2.02명에서 2021년 1.79명, 1.82명으로 급감했다.
‘미혼 남녀가 결혼 상대에게 바라는 조건’도 맞벌이 지향에 맞춰 변화했다. 일본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바라는 조건 중 ’경제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응답은 2015년 42%에서 2021년 48.2%로 증가했다. 일본 여성이 상대 남성에게 바라는 조건으로 ‘가사 및 육아능력’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2015년 57.7%에서 70.2%로 급증했다.
첫째 아이 출산 후에도 취업을 지속하는 일본 여성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이 비율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취업 중인 기혼 여성 기준 2010∼2014년 57.7%에서 2015∼2019년 69.5%가 됐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촉진’ 등 일‧가정 양립 정책이 지난 30년간 전개됐고, 앞으로도 일‧가정 양립이 중심축이 돼야 한다면서도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양해지는 고용 형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육아휴직 기간 및 급여 확대와 같은 정책 속 사각지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한국 근로자는 126만3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정책 전달 방식도 고민할 부분이다. 모리이즈미 연구원은 “사회 전체가 미래 세대를 함께 키우자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비혼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확산하는 속에서 저출생 대책이 긍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청년 인식을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상림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발제에서 ”기후변화가 불안감을 높여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발표되고 있다”며 “단순히 ‘이거 필요하면, 이거 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청년들이 어떤 것을 위기로 느끼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