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원내 지도부가 ‘채 상병 특검법’, ‘의료개혁’ 등 주요 현안을 두고 한동훈 대표와 공개적인 입장차를 드러내며 한 대표의 리더십이 연일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3일 한 대표가 던진 ‘제3자(대법원장) 추천’ 방식을 수용하되 야당의 비토권을 담은 4차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가운데, 한 대표가 임명한 정책위의장마저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한동훈표’ 중재안들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두 번이나 채 상병 특검법안을 발의한 것은 정쟁용으로 대통령 탄핵을 빌드업하기 위한 음모”라며 “수사기관 결과 발표 뒤에 국민들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특검을 검토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엔 의원총회 등 당내 논의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한 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한 대표는 경북 구미를 찾아 ‘반도체산업 현장간담회’를 마친 후 이날 발의된 민주당 안에 대해 “내용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며 “제 입장은 그대로다”라고 밝혔다. 친한(친한동훈)계 장동혁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한 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다는 것이고, 다만 당내 논의를 거쳐야 하고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그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대표가 임명한 김상훈 정책위의장마저 앞장서 반대 목소리를 내며 한 대표의 채 상병 특검법 추진은 사실상 좌초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정책위의장은 전날 YTN 라디오에서 “특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채 상병 순직과 같은 그런 선례를 더 이상 남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재발 방지에 반드시 특검이어야 되는가에 대해선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한 대표께) 드렸다”고 했다.
친한계 의원들도 당내 반대 여론을 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시간에 맡기겠다’는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한 친한계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초선 의원들 정도만 찬성하고, 반대가 중론”이라며 “공수처 수사 결과가 나오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지 않겠나. 우리쪽(친한계)은 시간을 두고 보잔 분위기”라고 했다.
의료개혁을 두고 한 대표와 정부가 ‘당정 갈등’ 양상을 보이는 데에 대해서도 당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대표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 증원 유예’를 골자로 한 중재안을 내세우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에 쓴소리를 내고 있다. 전날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을 비공개 방문해 응급의료 현장을 긴급 점검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의료대란’ 실태가 실제보다 과장됐고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한 대표는 응급현장 방문을 통해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에 김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흔들림 없이 정부 의료개혁을 강력 지원할 것”이라며 정부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한 영남권 의원은 통화에서 “한 대표의 중재안을 많이 기대했는데, 유예안을 가져오면서 정부 개혁안이 동력을 잃게 돼 아쉽다”고 했다. 다른 TK(대구·경북) 중진 의원은 “당정 갈등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진다”며 “한 대표의 중재안이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한 대표가 추진하는 중재안들에 대해 당내 부정적 여론이 꿈틀대며 추진 동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한 대표는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TK 지역을 찾아 텃밭 다지기에 힘썼다. 그동안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중심의 외연 확장에 집중해 왔던 한 대표가 전통적인 당 지지층 마음 잡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한 대표가 찾은 경북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한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생가 방문에 앞서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방문해 “구미는 보수의 심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산업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반도체특별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11년 만의 대표회담에서 반도체 가지고 정치하지 말자는 말을 들었다. 잘해 보자는 의기투합을 했다”고 말했다.
또 한 대표는 새마을재단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와 면담했다. 한 대표는 당대표 후보 시절 이 지사와 만남이 불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