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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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 병원 10곳서 거부해도… 정부는 “의료 붕괴 아냐”

‘응급실 이송 거부’ 사고 잇따라

인근 종합병원 등 모두 이송 거부
한달 만에 의식 찾은 2세 여아 위중
40대 임신부 구급차서 응급 분만
다리부상 근로자 과다 출혈 사망

복지부 “고질적 필수의료 인력난”
군의관·공중보건의 배치 계획
“중증환자 치료 못해” 실효 논란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우려 고조

전공의 1만2000여명이 7개월째 수련을 포기한 여파로 전국 병원의 응급실 위기상황이 고조되는 가운데 열 경련을 일으킨 두 살 여아가 서울과 수도권 병원의 응급실 10곳에서 이송이 거부되면서 의식불명에 빠지는 등 전국에서 ‘응급실 이송 거부’로 인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4일부터 이대목동병원 등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부 응급실에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배치할 계획이지만 ‘추석 연휴에 응급실 대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긴박한 환자 이송 현장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3일 서울 한 대형병원에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정부는 경증이나 비응급환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추석 연휴 중 당직 병·의원 4000곳 이상을 지정해 운영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3일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4일 오후 8시40분쯤 일산에 사는 하모(2)양이 열과 경련 증상을 보여 119 신고로 11분 만에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하지만 구급차는 인천 인하대병원 이송이 결정될 때까지 1시간5분 동안 출발하지 못했다. 서울과 일산 각각 3곳, 김포 2곳, 부천과 의정부 각각 1곳의 병원이 ‘소아과나 소아신경과 의사가 없다’는 등 이유로 이송을 거부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고, 11번째 연락한 ‘빅5’ 병원이 수용가능했지만 이송 시간 등을 고려해 결국 인하대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재 퇴원한 하양은 의식은 있지만 경직된 상태로 알려졌다.

 

정부는 “‘응급실 미수용’ 사례로 의사 인력 부족이나 의료전달체계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로서 (발생한) 이송 지연이나 초기 대응 문제인지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의료 역량의 한계 속에서 이런 사고들이 자꾸 벌어져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기도와 서울·인천 등 각 지자체에 ‘조사 명령서’를 보내는 등 진상조사에 나섰다.

사진=KBS 보도화면 캡처

전국 병원 응급실의 환자 이송 거부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충북 음성군에서는 지난달 15일 새벽 40대 임신부가 분만 진통을 겪고 있다는 119 신고에 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인근 병원 4곳에서 ‘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이송이 거부된 사이 양수가 터져 구급차에서 응급분만 끝에 출산했다. 지난 7월엔 60대 화물차 기사가 경남 김해시 대동산업단지 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1.5t 콘크리트 기둥에 다리가 깔리면서 숨졌다. 당시 부산·경남지역 병원 10곳이 이송을 거부해 1시간여 후에야 응급처치가 이뤄졌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일부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의료 붕괴 상황은 아니라고 거듭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의료체계가 무너졌다’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의료체계가 붕괴됐다는 표현은 과하다”고 답했다. 조 장관은 “(응급의료체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객관적인 지표를 공표하고 병원마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우려가 있는 병원에 전담관을 붙여 밀착 모니터링하고 핀셋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도 이날 응급의료 일일브리핑에서 “일각에서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실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중증응급 질환의 수술·시술이 제한되는 곳이 많다’는 주장을 한다”며 “전국 응급의료센터 180개소의 집단행동 이전과 2일 기준 진료 가능 기관을 비교해 보면 중증응급질환의 진료 제한은 새로 발생했다기보다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기인한 오래된 문제”라고 했다. 진료 가능 기관 수는 평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응급 의료 등 비상 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차관은 다만 “건국대충주병원,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등 3곳 응급실을 단축 운영하고 있고, 1개 병원은 단축 운영할 예정”이라며 “응급실이 조속히 정상가동될 수 있도록 4일부터 강원대병원(5명), 세종충남대병원(2명), 이대목동병원(3명) 등에 군의관 15명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국대충주병원 운영 제한에 대비해 충북대병원에 군의관 2명을, 충주의료원엔 공보의를 배치하고,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단축 운영하는 아주대병원에도 군의관 3명이 배치된다.

 

의료계에선 군의관·공보의 응급실 배치가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군의관, 공보의는 응급실에서 중증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면서 “교육이 전혀 안 돼 있어서 응급실 환자 진료에 투입하면 오히려 문제만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응급의학과는 전공의 비율이 50% 이상으로 타과보다 훨씬 높은데 전공의 500여명이 빠져 공백을 메우기 쉽지 않다”며 “이미 현장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 주요 의과대학들이 2학기 개강을 했지만 비수도권 9개 국립대의 의대 재학생 4697명 가운데 180명(3.8%)만 등록금을 납부해 전공의 이탈 장기화에 이어 의대생들의 학교 복귀도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9월이 (의대생 복귀) ‘골든타임’”이라며 “9월 학기에 의대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재영·김유나 기자, 춘천=배상철 기자,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