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북한인권’ 강조 尹 정부에 北 인권 단체들 “의지만 있고 실질 진전 없어”

윤석열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을 줄곧 강조해왔지만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엔 사무총장은 인권 유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정치범 전원 석방과 수용소 해체를 골자로 한 15개의 권고문을 북한 정권에 제시하며 갈수록 열악해지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우려했다.

 

2일 유엔 사무국이 공개한 제79차 유엔총회 ‘북한 인권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은 “인권 침해 혐의를 받는 이들을 조사하고 기소해 정의를 실현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그동안 저질러진 침해 실태를 알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북한의 인권 상황을 17페이지에 걸쳐 기술한 이 보고서는 ‘인권 유린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을 첫 항목으로 하는 북한에 대한 15개의 권고사항을 실었다.

 

보고서는 북한 내 인권 유린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인권 정책을 시행할 것, 모든 정치범 석방과 정치범 수용소 해체, 정치적인 의견이나 사회적 배경에 근거한 자의적 체포와 투옥 중단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제법에 위배되는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종식하고, 공정한 재판과 독립적인 사법부 확립을 위한 조치를 취하며, 모든 감시 체계를 정치적 억압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 것을 북한에 요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북한 인권이 올해도 개선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일부 부문에선 오히려 악화된 사실이 지적됐다. 구테흐스 총장은 “보고 기간 표현과 정보, 사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가혹한 처벌 실태를 꼬집었다.

 

주민들에 대한 이동 제약과 관련해서도 “국경 간 무역은 부분적으로 재개됐지만 강화된 감시로 인해 사람들의 국경 이동이 크게 제한됐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에 구금된 탈북민이 강제로 송환되고 있으며 이들이 북한에서 고문과 자의적 구금 등 인권 침해의 실질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런 상황에서 3일 국내 북한인권단체들은 윤 정부의 북한 인권 기록 관리 체계 문제 등을 지적하고, 데이터를 모으는 이상의 개선 조치가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유엔에서도 북한 인권 가해자를 책임 규명하고 기소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법무부 기록보존소에 넘겨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그친다는 것은 현재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북한 주민 입장에서 갈 길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피해를 받는 사람들로서는 정부가 매년 기록만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반인도 범죄를 즉각 기소하자고 방법을 찾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등 현실적인 행동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북한에 경고를 주거나 가해자 책임 추궁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수치에 초점이 맞춰진 기록은 업데이트 되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진실 규명, 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을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모습은 잘 안 보인다는 얘기다.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관련 기록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에 대해 정 대표는 “북한인권법은 제정됐고 그래서 시행은 하는데 형식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비정부기구(NGO)들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내외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에 비해 우리 정부가 소극적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대표는 “문재인정부 때는 통일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많이 추진하지 않다가 윤 정부 들어 북한 인권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면서도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북한 인권재단이 설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북한 인권법을 통해 시행돼야 할 여러 조치가 따라가줘야 하는데 법 실행 과정에서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등이 조속히 되지 않고 있다”며 “제가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이라 국회에도 이 추천을 서두르라는 권고를 인권위원들과 함께 보냈는데 야당 쪽에서 인사 추천과 협상을 빨리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관련 예산 집행도 못하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이 대표는 지적했다.

 

이전 정부 때 북한을 자극할까봐 비공개 처리했던 북한 인권 기록을 지금은 공개도 하는 발전을 이뤄내긴 했지만, 여전히 데이터 관리의 체계가 부족한 점은 한계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통일부는 북한인권 유린 가해자와 피해자 수가 총 4071명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가 이후 이 숫자에 당사자가 아닌 제3자 등이 포함됐다고 정정 요청해 ‘과장보고’ 논란이 일었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 “향후에는 통계나 데이터를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발표하자는 기준을 마련해서 어디서 문의가 오더라도 일관성 있고 신뢰성 있게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간에서 약 20년간 북한 인권 기록을 해 온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북한인권 관련 가해자, 피해자, 증언자, 목격자를 포함해 저희는 8만5000명 이상의 카드를 갖고 있는데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4000여 건은 사실 큰 감흥이 없다”며 “후발주자인 정부 입장에서 정부가 가진 것보다 20배 이상을 민간이 가졌다는 점 자체가 불편할 수 있지만, 이런 노하우를 잘 활용하기보다 손발을 묶어놓고 정부가 조사 기록을 독점하는 식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정부와 민간이 관련 자료에 대한 상호 검증을 하고 도움을 주면서 협력이 더 매끄럽게 가능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