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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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밑에서 총리 지낸 필리프 “차기 프랑스 대선 출마”

마크롱 임기 아직 3년 가까이 남았는데…
여당 총선 패배 후 마크롱 레임덕 가속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여소야대 의회에 가로막혀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가는 가운데 마크롱 밑에서 총리로 일한 중도 우파 성향의 거물급 정치인이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마크롱의 레임덕이 한층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에두아르 필리프 전 프랑스 총리. 그는 오는 2027년 물러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을 차기 대선에 후보로 출마할 뜻을 밝혔다. AF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에두아르 필리프(53) 전 프랑스 총리는 이날 프랑스 주간지 르포앵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프는 우파 성향 공화당 소속으로 정치를 하다가 2017년 중도 성향의 마크롱 진영에 합류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이 그해 5월 첫 정부를 조직할 당시 총리로 발탁됐다. 이후 공화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2020년 7월까지 약 3년2개월 동안 프랑스 정부를 이끌었다.

 

필리프는 마크롱과 같은 정당에 속한 적은 없으나 서로 상당히 신뢰하는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탄소세(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이른바 ‘노란조끼’ 시위가 프랑스 전역을 뒤덮으며 마크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총대를 메고 야당 및 노조 지도자들과의 협상을 도맡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막 시작된 202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직후 모든 책임을 지고 마크롱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며, 마크롱은 이를 곧장 수리하고 공화당 소속 장 카스텍스(59)를 새 총리에 임명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5월 취임해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은 3선 도전이 불가능한 만큼 오는 2027년 5월 10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예정이다. 차기 대선까지 아직 3년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는데 벌써 차기 대권 주자가 등장한 것은 요즘 마크롱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잘 보여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가 총선 후 2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새 정부를 꾸리지 못하면서 ‘마크롱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실시된 프랑스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마크롱의 중도 집권당은 의석을 많이 잃고 2당으로 전락했다. 좌파 연합 신인민전선(NFP)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어 원내 1당이 되었고,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3당으로 부상하며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다만 좌파와 중도, 극우 가운데 어느 세력도 단독으로 하원 전체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을 확보하진 못했다. 프랑스에서 총리와 그가 이끄는 정부는 하원의 신임 대상이다. 불신임 투표에서 의원 과반이 찬성표를 던지면 총리가 물러날 수밖에 없는 만큼 정치가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NFP는 “우리가 원내 1당인 만큼 총리를 배출하고 정부를 구성할 자격이 있다”며 파리시 재정국장으로 일한 좌파 성향의 루시 카스테트(37)를 새 총리 후보자로 추천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의회의 불신임을 받을 게 뻔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중도 좌파와 중도, 그리고 중도 우파가 함께하는 연립정부 구성을 촉구했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는 총선 후 2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새 정부를 꾸리지 못하고 올해 1월 마크롱이 임명한 가브리엘 아탈(35) 총리가 정부를 이끄는 어정쩡한 상황을 겪고 있다. 당장 2025년도 예산안 편성부터 차질을 빚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