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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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대 추가 보험료 연간 최대 8배 차이… 세계 첫 시도

보험료율 9→13% 인상안 쟁점은

기금수익률 1%P 인상… 5.5% 목표
연금고갈시점 2072년까지 연장
자동조정장치로 장기 안정성 담보

세대별 차등… 50대 年 최대 36만원 ↑
의무가입연령 64세로 상향 검토
은퇴 앞당겨진 중장년 불만 예상
勞 “최저생계 보장 안돼 철회해야”

기대여명·가입자 증감 따라 인상률 조정
연금 재정위·국회 특위 “시기상조” 밝혀
“물가 반영 안돼 소득대체율 삭감” 반발도

정부가 4일 공개한 연금개혁안은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 대비 연금지급액(소득대체율)은 더 인하하지 않고 42%로 유지하되, 기금수익률을 1%포인트 끌어올려 연금 고갈 시점을 2072년까지 기존보다 16년가량 늘리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간판 앞에 빨간신호등이 보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 과정에 세대별 보험료 인상률을 달리해 ‘돈만 내고 못 받을 것’이라는 젊은층 불안을 다독이고, 차후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여명 증감률’ 등을 반영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해 수급액을 조정해 장기 안정성을 담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중장년층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대통령실이 앞서 장담한 ‘기금 고갈 시점 30년 연장’을 실행하려면 최소 12년 뒤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하는데, 논란이 예상된다. 세대별 차등화는 올 초 국민 공론화 과정(의제숙의단)에서 청년 대표들도 찬성을 꺼렸고, 자동조정장치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의제에서 아예 빠졌던 방안으로, 정책 추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추진계획 발표하는 복지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보험료·수익률 올려 2072년까지 연장

 

정부는 이번 안에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늘리고, 명목 소득대체율은 올해 42%로 동결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금수익률을 5.5%로 1%포인트 올려 기금 고갈 시점을 2072년까지 늘릴 방침이다.

 

지난해 10월 5차 종합운영계획에도 이 시나리오가 제시됐지만 위험자산 비율을 높여야 하는 게 문제다. 복지부는 “현재까지 기금 누적 장기 수익률은 5.92%인데 보수적으로 4.5%로 잡은 것”이라며 “위험자산은 현행 58%에서 65% 정도로 높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수익률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급액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앞서 2차례 개혁(1998년, 2007년)에선 보험료율은 인상하지 못했고, 소득대체율을 인하 조정하는 데 그쳤다. 이번엔 보험료율을 4%나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인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올 초 국민 공론화 시 소득대체율 50%가 지지받았고, 21대 국회 막판에 44%까지 협의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수급액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다고 보긴 어렵다.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과 참여연대가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자는 국민의 의견을 철저히 외면한 ‘연금 개악안’”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복지부는 “이전 개혁에서 2028년까지 40%로 인하하기로 했는데, 지금보다 더 내려가는 것을 멈춘 것”이라며 “이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50·20대 보험료 인상분 최대 8배 차

 

복지부는 세대별 보험료 차등 방안에 대해 “50세를 기준으로 잔여 납입기간이 10년이니 인상 속도를 1%포인트로 하면 4년 동안 인상해 13%에 도달하고, 20년이 남은 40대는 0.5%포인트씩 인상해 8년 후에 13%에 도달한다”며 “30대는 30년이 남아 0.33%포인트씩 올려 12년 후에, 20대는 40년이 남아 0.25%포인트씩 인상해 13% 인상까진 16년이 걸린다”고 했다.

 

차등 인상은 세계 첫 시도이다. 이 안은 젊은 세대를 다독일진 몰라도 당장 중장년 세대의 반발을 부를 전망이다. 보험료 인상분의 차이가 최대 8배이고, 복리 개념을 가정하면 전체 세대의 보험료가 13%에 도달하는 2040년엔 그 차이가 수천만원에 이를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원본부. 뉴스1

구체적으로 최근 3년간 연금 납부자의 평균 소득(300만원)을 기준으로 50대가 추가로 낼 보험료 1%포인트는 3만원으로 직장가입자면 절반인 월 1만5000원을 부담하고, 40대 직장인은 0.5%의 절반인 7500원, 30대 직장인은 0.33%의 절반인 5000원, 20대 직장인은 0.25%의 절반인 3750원을 부담하게 된다. 1년으로 보면 50대 직장인의 보험료 인상분은 18만원이고, 20대 직장인은 4만5000원이다. 하지만 50대 지역가입자라면 36만원이 늘게 돼, 체감하는 최대 보험료 인상분 차이는 20대와 8배가 된다.

 

은퇴 시기가 앞당겨진 사회 분위기에서 ‘기업이 50대 고용을 꺼리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도 50대 초반이면 첫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는데 50대 인상률이 높으면 기업 입장에서 50대 고용을 꺼리게 될 것”이라며 “20대도 좋은 일자리에 있을 수 있고 50대는 오히려 직업이 없을 수 있다. 직장 안정성이나 소득수준별로 보험료를 차등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저소득·중산층 실질소득 강화를 위해 출산 및 군 복무 기간을 납부 시기로 간주하는 크레디트 제도를 확대하고, 보험료 지원 대상과 기간도 늘릴 방침이다. 의무가입연령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상향을 검토하고, 기초연금의 경우 ‘저소득 노인’에 대해선 40만원으로 인상 후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대중소기업 노후보장 수준 차이를 줄이기 위해 퇴직연금 가입을 점차 의무화하고, 고소득 직장인 위주인 개인연금 확산을 위해 세제 인센티브도 늘려나갈 방침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안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재정 안정을 빌미로 공적연금을 민간연금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했고, 민주노총은 “노동시민단체가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한 것은 소득대체율 50%로 노후 최저생계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 재정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이 지난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유럽출장 취소 및 연금개혁특위 활동 종료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간사, 주호영 특위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간사. 뉴시스

◆정부 제안한 ‘자동조정장치’란

 

정부가 재정과 인구 여건 등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논의를 추진한다. 기대여명과 가입자 수 증감에 따라 연금액 인상률을 조정하겠다는 건데, 사실상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3차 국민연금심의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연금개혁 추진계획(개혁안)을 확정했다.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국민연금 특성을 고려해 자동조정장치로 수급자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물가상승률에 ①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 ②기대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 인상액을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입자가 줄거나 수급자가 많아질 경우, 연금 인상분이 물가상승분보다 낮아질 수 있다. 지금은 실질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매년 물가상승률에 맞춰 연금액을 인상하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기금소진을 32년 늦출 수 있다는 게 복지부 분석이다. 현행 보험료 9%, 소득대체율 40%는 2041년 연금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2056년 기금이 소진된다. 이번 모수개혁안에 따라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42%로 상향하면 각각 2054년, 2072년으로 밀린다. 여기에 2036년 자동조정장치까지 도입하면 수지적자는 2064년, 기금소진은 2088년까지 늦출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보장성 약화를 부를 수 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는 소득대체율을 굉장히 삭감하는 것”이라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나 국회 연금특별위원회에서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연금액이 많지 않고 노인빈곤은 OECD의 3배 수준인데,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국민연금 제도가 노후 소득보장 역할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재영·조희연·이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