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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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신화에 가려진 여류시인의 고뇌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2만9000원

 

아름다운 금발의 유망한 미국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 그의 인생은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 시인 테드 휴스와 결혼하며 ‘황금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반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드 휴스가 외도를 했고, 플라스는 별거 이후 극한의 생활고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생을 마감했다.

문학계 흔한 ‘가십’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은 1960년대 당시 태동하던 페미니즘과 결합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적 감성을 난도질한 남성적 이성, 남편의 외도로 상징되는 폭압적 남성성이라는 전형에 맞아떨어지면서 플라스는 순식간에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순교자로 등극했다.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2만9000원

그러나 거대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페미니즘의 순교자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만이 전부일까.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녀를 둘러싼 평면적 신화와 건강치 못한 관음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준다. 일기에서 플라스는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고 치사하고 범속한 욕망을 보여준다.

‘신화화된 페미니스트’의 추락이 아니다. 그저 덧입혀진 이미지 말고, 한때는 눈부셨던, 때로는 추하고 불쌍하고 표독스러웠던,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갈구하던, 한 사람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책은 실비아 플라스가 맞닥뜨렸던 고민과 문제는 보편적 인간, 보편적 여성의 경험임을 알려준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