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세르히 플로히/ 이종민 옮김/ 글항아리/ 3만2000원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 이날 이후 세계는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세계 무역은 곳곳에 구멍 났고 대량 인명 피해와 인권 압살이 일어났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서방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이어졌고 일부 도시를 탈환하더니 러시아 본토 공격까지 진행 중이다. 교량을 폭파해 보급선을 끊는가 하면, 드론을 띄워 군사시설을 요격하는 등 재래전과 첨단전이 복합적으로 펼쳐지면서 앞날은 안갯속의 혼전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전쟁은 어디서 어떻게 단추가 끼워졌고,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른 해묵은 갈등 요소는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우크라이나 역사 전문가인 저자는 비록 2023년 초반까지의 내용을 담았지만, 이 전쟁의 역사적·정치적·국제적 성격을 정확하고 심도 있게 짚어냈다. 저자는 현재의 사태를 역사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과거’의 연대기를 서술했다. 러시아는 키이우 기원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자국의 역사를 해석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여기는데, 이는 1462~1505년 이반 3세의 통치에서 기원한다.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사상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머릿속 지도도 모두 여기서 나왔다. 나아가 제국주의 권력을 향한 투쟁의 맥락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알려면 19세기 역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20세기에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얼마나 빠르게 벗어났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24일에 시작되지 않았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이뤄진 영토 합병)과 돈바스 국지전에서 이미 싹은 텄고, 이후 8년간 하이브리드 전쟁이 지속됐다. 따라서 여전히 생생한 8년 전 기억과 주요 인물들의 행동을 되짚어보면 이 전쟁의 기원 및 과정을 더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데, 바로 거기서 일련의 패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대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의 확립’이 부딪치며 일으킨 갈등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을 우크라이나의 독립 전쟁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는 유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회색 지대는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완충지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유럽 쪽으로 한 발씩 더 옮겨가고 있고, 그에 대한 전망은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자세히 다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