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엔 없는 게 없다. 이제는 유튜브 시대가 아니라 ‘대’ 유튜브 시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 취향을 정확하게 분석해줄 뿐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해 앞으로 내가 듣고 싶어 할 영상까지 추천해준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은 거실에서 유튜브가 내가 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유튜브 알고리즘이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날 안내하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고양이와 관련된 영상을 시청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먼 과거부터 고양이를 사랑한 작곡가들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세기 혁명의 아이콘인 러시아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고양이를 위해 네 개의 모음곡 ‘고양이 자장가’를 만들었고, 라벨은 ‘야옹 듀엣’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고양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자 하는 열망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진화해 오고 있었다.
유튜브가 가장 먼저 안내한 영상의 제목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무려 조회 수가 1000만회가 넘는다. 이제는 정말 고양이를 위한 콘텐츠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엔 사람을 위한 콘텐츠뿐 아니라, 동물을 위한 콘텐츠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고양이 집사로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영상을 재생해보니 오만가지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내 앞에 앉아 있던 고양이는 즉시 반응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고양이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눈앞에 등장한 새들에 흥미로워했다. 다채로운 새소리가 고양이의 자연 본능을 깨웠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호전적인 리듬에 반응하는 것과 같은 걸까. 가만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새소리가 나오는 음악을 들었을 때 고양이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서 새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
문제의 새소리는 클래식 음악 속에서 흘러나왔다.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다. 고양이는 새소리가 나올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스피기가 작곡한 ‘로마의 소나무’는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장소나 명물을 대상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중 3번째 작품인 ‘자니콜로의 소나무’는 로마 남서부에 위치한 자니콜로 언덕을 묘사한다. 보름달의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자니콜로의 소나무가 등장하고, 저 멀리서 나이팅게일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 음악에서는 특이하게 악기가 새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녹음한 새소리를 사용한다. 음악이 진행되는 중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녹음된 새소리를 재생하는 것이다. 무릎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반응하며 즐거워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전원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베토벤 교향곡 6번에도 새소리를 묘사한 대목이 등장한다. 오보에는 메추라기를 표현하고, 플롯은 나이팅게일, 클라리넷은 뻐꾸기를 표현한다. 악기를 통해 아름답게 전원 속의 새소리를 묘사한다. 베토벤의 귀에는 이 모든 것이 음악으로 들렸을 것이다. 결국 새소리도 음의 높낮이가 있고, 리듬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저마다의 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새소리를 얼마나 똑같이 묘사하는지 고양이는 그 순간마다 반응했다.
물론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동물인 우리 인간과 고양이들에겐 음악의 정의도 종류도 완전히 다르다. 인간이 만들어 온 음악이란 건 생각보다 고도의 지적 산물이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시작과 함께하고, 무려 기원전 1만8000년 전에 만들어진 악기가 발견될 정도다. 그만큼 음악의 역사는 길고, 그간 발달시켜온 음악의 내용은 깊다. 그렇지만 베토벤이 그랬듯, 새소리도 음악으로 생각한다면,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이 생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단순한 물리적인 소리 이상의 의미가 생긴다. 넓은 의미의 교감이다. 여러 복잡한 소리들이 섞인 클래식 음악은 고양이에겐 단지 소음이지만, 새소리가 들려올 때만큼은 우리가 음악을 함께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