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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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왜 한국이 싫은 걸까

‘한국이 싫어서.’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 이 제목은 2015년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소설 제목이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장건재 감독의 2023년 동명의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올해 8월 28일 개봉했다. 장편소설을 압축해 2시간 미만의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감독은 공간적 배경을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바꾸고 소설 속 인물을 일부 축소, 변형시켰지만 전반적으로 원작의 흐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시청각적 물성과 매력을 충분히 살려낸다.

‘한국이 싫어서’는 ‘왜 한국을 떠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인서울 대학을 나와 힘들게 얻은 직장과 남자친구를 두고 뉴질랜드로 떠나는 주인공 계나는 왜 떠나는가? 라는 질문에 단 두 마디로 대답한다. ‘한국이 싫어서.’ 그녀는 왜 한국이 싫은 걸까? 사실 이 질문은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 사회 분석 담론과 맞닿아 있다. 2010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년층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낸 이후 ‘헬조선’ ‘N포 세대’ ‘각자도생’ 등 고도성장의 마침표를 찍고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민낯과 청년들의 절망을 표상하는 키워드가 끝없이 만들어져 왔다. 많은 대중예술작품들은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단골 테마로 등장시켰고 소설과 영화 ‘한국이 싫어서’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 있다. 영화는 무한경쟁과 불안한 미래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년들의 고민과 몸부림을 지켜보되 파국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영화에는 애틋하고 안타까움 속에서도 사랑스럽고 희망적인 기운이 흐른다. ‘행복’은 이 작품에 매우 자주 소환되는 단어이다. 영화는 과잉이다 싶을 만큼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TV에서는 행복 전도사가 행복을 설파하고 청년들은 행복을 찾아 헬조선을 떠난다. 그러나 과잉된 행복 언설은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 행복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다. 소설이 가상의 청자 즉 독자를 향해 고백체를 구사하듯이 영화는 스크린 밖의 화자인 관객을 향해 말을 건다.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났지만 진정 행복은 어디 있느냐고, 그리고 이 사회는 외형적인 경제성장에 걸맞은 사회적 품격을 갖췄느냐고. 어쩌면 ’한국이 싫어서‘는 대답이라기보다는 멀리 돌아와 다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장건재 감독은 일찌감치 장편 데뷔작 ’회오리바람‘에서 청소년기의 사랑과 고민, 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강렬한 에너지로 담아낸 바 있다. 두 번째 장편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는 일과 사랑을 탐구하는 청춘들의 아름다운 여행을 그렸다. 여러 작품을 만드는 동안 청년 장건재는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되었으며 지금은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장건재 감독에게 이 영화는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공감과 우정의 인사와 같은 영화이다. 지금도 계나는 자신을 위한 대답을 탐색하는 중이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물음표는 지속될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계나와 친구들의 지속될 여정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영화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