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자신의 옛 연인을 수석 보좌관으로 채용한 장관이 여론의 비난을 받은 끝에 사임했다.
6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젠나로 산줄리아노(62)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이 이날 조르자 멜로니 총리에게 사표를 제출해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공직자로서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산줄리아노가 애인이던 마리아 보치아(41)를 문화부 장관 수석 보좌관으로 채용한 사실은 보치아가 산줄리아노와 함께한 여행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알려졌다. 의혹이 제기되자 산줄리아노는 지난 4일 방송에 출연해 보치아와 불륜 관계임을 털어놨다. 두 사람은 5월 나폴리에서 처음 만났으며 이후 급속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산줄리아노는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사과했으며, 보치아와의 관계도 지난여름 완전히 정리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문화부 장관이던 산줄리아노의 국내외 출장 등 공식 일정에 보치아가 보좌관 자격으로 동행한 점이다. 이탈리아 언론은 보치아가 쓴 교통비와 숙식비 등 경비가 국고에서 지출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장관이 애인을 위해서 국가 예산을 사용했다면 이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산줄리아노는 보치아는 애초에 무급 보좌관이었고 여행에 들어간 경비 중 국가 예산은 단 1유로(약 1500원)도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더 심각한 사안은 보치아가 보좌관 자격으로 장관을 수행하면서 각종 국가 기밀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례로 보치아는 산줄리아노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 역사 도시인 폼페이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선 오는 10월 열릴 주요 7개국(G7) 문화장관 회의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다. 이탈리아는 올해 G7 의장국이다. 보치아의 SNS에는 그가 폼페이에서 열린 G7 관련 회의에 장관 보좌관으로서 참석한 모습, 행사 준비에 관한 문서를 살펴보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들도 있다.
멜로니 총리는 산줄리아노의 사직서를 수리한 뒤 SNS에 올린 글에서 “퇴임하는 문화부 장관의 노력으로 이탈리아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산줄리아노의 스캔들에 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BBC에 따르면 멜로니 내각은 요즘 몇몇 장관의 공금 유용, 갑질 등 각종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최근 내각 회의에서 장관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며 “늘 활동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