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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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녀 부양에… 노후준비 ‘무방비’ [심층기획-2차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

〈2〉 은퇴 준비 안된 베이비부머

불안정한 공적연금 소득사각 못 메워
퇴직 후 대다수 단순일자리로 내몰려

韓 노인 소득빈곤율 OECD 평균 3배
65세 이상 취업자 5년간 年 9% 증가
부모 의존하는 ‘캥거루족’ OECD 1.6배
60년대생 15%가 부모·자녀 ‘이중부양’

최소한 생활비 부부 月 214만원 필요
고령층 국민연금 수령 월평균 82만원
소득절벽에 연금 조기수급자도 최대치
“두번째 일자리 경직… 노동 개혁 필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 부설연구소의 비전임 연구원 송모(53·여)씨는 ‘노후’라는 말만 들어도 암담한 심정이다.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수년간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을 떠돌다 10년 전부터 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제든 계약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정년을 보장받는 전임교원과 달리 학교와 매년 단기계약을 맺고 있다. 출판사에서 수십 년간 일한 남편과 알뜰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하기엔 형편이 빠듯하다.

 

송씨는 “지난해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시아버지 간병비로 매달 100만원 이상 들었는데, 아직 건강하신 다른 어른들을 보면 감사하면서도 (앞으로 닥칠) 금전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며 “아직 고등학생인 아들이 일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도와줘야 할 텐데, 우리 부부 노후 대비는 자꾸만 뒷전이 된다”고 말했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05만명이 은퇴했고 이젠 단일세대 최대인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54만명이 은퇴 연령(60세)에 진입하고 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초고령사회(노인 비중 20% 이상) 진입이 예상되는데, 노후 준비가 빈약한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과거 우리 사회를 지탱한 가족 부양 시스템은 이미 붕괴했고 공적연금을 통한 사회 부양에 힘이 실린다. 다행히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고 수급액은 늘리는’ 양립하기 힘든 논의가 시작됐지만, 공적연금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재산이 많거나 사적 연금이 충분한 일부를 제외하곤 일을 더해 소득을 보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4년 차 경비원 박경수(62)씨도 30년간 일한 중소기업에서 5년 전 정년퇴임했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에게 가족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학 마지막 학기인 아들의 생활비를 대면서 80대 치매 노모까지 모셔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의 간병비는 올해 월 30만원이나 올랐다. 매달 200만원 가까운 비용을 형제자매와 갹출하고 있다. 미혼인 30대 초반 장녀는 프리랜서로 아직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고, 아내가 공공근로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미래를 대비할 여력은 없다. 박씨는 “네 식구가 사는 집 대출도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아내도 나도 몸을 주로 쓰는 일을 해서 ‘아프기라도 하면 끝장’이라는 말을 아내와 자주 한다”고 했다.

 

◆은퇴 후 일해야 산다, 일자리는 열악

 

박씨는 1차 베이비부머지만 송씨와 같은 2차 베이비부머가 은퇴 후 직면할 현실도 크게 다르진 않다.

 

9일 한국고용정보원의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 실업급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5세 이상 취업자는 326만5000명으로, 5년간 연평균 9%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취업자 수가 1.2% 증가한 것에 비해 급증했다. 노인 임금근로자의 74%가 새 일터에서 일하는데, 이들의 66%는 임시근로자, 12%는 일용직이다. 단시간 근로 비중, 단순노무직은 각각 70%였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어 젊을 땐 쳐다도 보지 않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은퇴 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노후 준비가 부족한 탓이다. 최근 국민연금연구원의 ‘2023년 기초연금 수급자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연금 수급 노인은 최소한의 생활비로 개인은 월 132만2000원, 부부는 214만3000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0∼59세의 평균 월급은 404만3000원으로 전체(364만원)에 비해 11.1% 높지만, 60세 이상은 261만2000원으로 전체의 71.8%에 불과했다. 정년 이후의 월급은 직전의 60% 수준으로 뚝 떨어지는 셈이다.

 

통계청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고령층(55∼79세) 중 최근 1년간 국민연금 수령자 비율은 51.2%(817만7000명), 월평균 수령액은 82만원이다. 장래 일하기 원하는 사람은 1109만3000명(69.4%)으로 전년 대비 0.9%포인트 상승했는데, 이유는 ‘생활비 보탬’(55.0%)이 ‘일하는 즐거움’(35.8%)보다 많다. 근로 희망 연령은 평균 73.3세로, 모든 연령층에서 증가세다. 부족한 노후 준비로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은퇴 후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은 “우리나라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미성숙, 소득보장제도의 낮은 소득대체율 등으로 광범위한 노후소득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이에 고용을 통해서라도 생계비를 벌충하고자 나이 들어서도 일하는 중고령 노동시장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모·자녀 부양에 노후 준비는 뒷전

 

가족 부양은 노후 준비를 더디게 만든다. 2022년 부모에 얹혀사는 20대 비율은 우리나라가 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1위다. 자립 대신 부모에 의존하는 ‘캥거루족’ 비율은 OECD 평균(50%)의 1.6배다. 청년 취업난이 심해진 탓인데, 올해 15∼29세 취업자들은 첫 직장을 얻기까지 평균 11.5개월 걸렸다. 통계가 집계된 2004년(9.5개월) 이후 역대 최장이다. ‘은퇴 준비는커녕 자식 건사도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인구 16.4%인 1960년대생들이 가장 심각하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1960년대생(만 55∼64세) 980명을 웹·모바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5%는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부양하고 월평균 164만원을 ‘이중부양’에 지출했다. 응답자 89%가 노후는 본인 책임이라고 했지만 62%만 노후 준비를 하고 있었고, 30.2%는 “고독사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저소득층에선 이 수치가 49.9%에 달했다. ‘마처세대’(부모 부양 마지막 세대, 자녀 부양 못 받는 처음 세대)의 자화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돌봄과미래 조사에서 노후준비 방법(복수 응답)으로 국민연금이 80%로 1위지만, 퇴직 후 소득 없이 연금도 받지 못하는 ‘소득절벽’에 대해선 81%가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공적연금의 사각지대’는 크고 넓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 결과 2021년 OECD 기준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하 집단)인 20∼59세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40.96%로, 중위임금 1.5배인 상 집단 가입률(80.46%)의 절반에 불과했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절벽에 연금 조기 수급

 

국민연금 수령액이 줄어도 애초 나이보다 당겨 연금을 받은 신규 조기수급자는 지난해 11만2031명으로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었다. 그간에는 2018년 4만3544명, 2019년 5만3607명, 2020년 5만1883명, 2021년 4만7707명, 2022년 5만9314명 등 6만명 미만이었다.

 

이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진 영향이 크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래 연금 수령 시기는 법정정년인 60세로 묶였지만, 1998년 1차 연금 개혁 때 2013년부터 61세로 늦추고 5년마다 1세씩 연장됐다. 지난해 62세에서 63세로 밀렸는데, 소득절벽을 견디지 못한 1961년생들의 조기 연금신청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진 5년 주기로 ‘낀 세대’들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 조기 노령연금은 법정 노령연금을 받을 시기를 1∼5년 미리 당겨 받는다.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연 6%씩 깎여 5년 당겨 받으면 30% 감액분을 평생 받는다. 4년 당기면 연금의 76%, 3년 당기면 82%, 2년 당기면 88%, 1년 당기면 94%를 받는다. 올해 2월 기준 조기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은 월 69만6584원이다.

 

앞으로 연금 수령 시기는 더 늦어질 것으로 예상돼,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후 어려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지금 노후 세대들은 주된 일자리에선 퇴직하고 나름 생계형 일자리를 얻는 양상”이라며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할 때 수급기간을 10년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20년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늘어난 기간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부담하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그 기간 동안 (은퇴자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며 “주된 일자리 퇴직은 빠르고 두 번째 일자리에 대해선 경직된 지금의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재영·조희연·이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