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 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물의 행성에서 인류가 6000년간 건설해온 수력 문명 인프라가 현재 붕괴 중”이라며 “이제 인류가 어디서 살고 번성할 수 있을지를 물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리프킨은 신간 ‘플래닛 아쿠아’ 출간을 맞아 지난 9일 한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갖고 “자본주의가 나타난 지 200년 만에 지구는 ‘재야생화’의 길로 가고 있다”며 “인류 중 상당수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계속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플래닛 아쿠아’는 지구 온난화로 수권(지구 표면에 물이 차지하는 부분)이 새로운 균형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지난 6000년간 인류를 지배한 수력 문명이 막을 내리고 신유목 시대와 임시사회가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인류는 농사를 시작한 이래 수력에 기반한 문명을 일궈왔다. 특히 지난 2세기 동안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혁명으로 물 이용은 절정에 달했다. 리프킨은 이 같은 역사를 “물을 격리해 인간의 실리주의적 변덕에 따라 이용·착취하겠다는 오만함”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2050년 무렵이면 61%의 수력 발전 댐이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면서 “수권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인류는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자본주의보단 물의 뜻에 따르는 수생태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리프킨은 강조했다. 생산보다 재생성, 효율성보다 적응성, 금융자본보다 생태자본, 국내총생산(GDP)보다 삶의 질 지표, 수직 경제에서 수평 경제, 중앙집권보다 분산된 가치사슬, 대기업 대신 민첩한 중소기업, 세계화에서 세방화(글로컬라이제이션), 지정학보다 생물권 정치, 국민국가보단 생물권 거버넌스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리프킨은 이런 관점에서 최근 원자력에 골몰하고 있는 한국 정부와 산업계의 움직임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는 전체 전기의 68%를 원전에서 얻지만 온난화로 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원전 냉각수로 쓸 수 없어 발전소가 폐쇄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하면 발전소 냉각수로 쓰이는 물의 96%를 아낄 수 있다”면서 “가뭄과 홍수 등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한국이 화석연료·원자력 같은 오래된 기술에 의존한다는 건 안타깝다”고 밝혔다.
리프킨은 ‘플래닛 아쿠아’에 사는 인류는 앞으로 물을 막고 길들이기보다 물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0년 이내에 기후위기로 아열대 지역에서 북극·캐나다·러시아로 이주하는 신유목민이 늘고, 3차원(3D) 프린팅을 통해 해체·재조립할 수 있는 집으로 이뤄진 팝업 도시가 출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신유목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며 “몇몇 정부는 붕괴할 수도 있다. 주로 중앙아메리카, 중동 정부들이 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