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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업 18% “퇴직 후 재고용” 10곳 중 4곳은 ‘정년 연장’ [심층기획-2차 베이비부머 은퇴 쓰나미]

〈3〉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

국민 여론 86%도 연장에 ‘찬성’
반대 기업 ‘인건비 부담’ 이유 꼽아

‘만 65세까지 연장’ 압도적 여론에도
정년제 운영 기업 60%는 “계획 없다”
경영계 “계속고용, 임금체계 개편돼야”
방식은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 선호

정부, 경사노위 통해 ‘계속고용 로드맵’
‘계속고용 장려금’ 지원 확대·요건 완화
“보조금 제도론 장기적 정책 대응 한계
정년 연장 방안이 보편적인 혜택 확산”

생활폐기물 수집 운반업체 성원환경은 올해 5월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2022년 정년을 법적 정년인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한 데 이어 단계적으로 정년을 높인 것이다. 성원환경의 직원 210명 중 55세 이상은 40%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젊은 직원들의 반발도 없진 않았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요구해 온 사측을 설득하는 일도 큰 과제였다.

장경술 성원환경 노동조합위원장은 10일 “환경 노동자들은 타 업종보다 노동 강도가 강해 사측에서는 정년 연장에 따른 업무 지장 우려가 있었는데, 노조 내에서 청년층을 먼저 설득했고 조합원들의 사기 진작을 근거로 내세워 동일임금을 적용하는 정년 연장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장 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입찰을 받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하는 업체가 전국에 1800여곳인데 성원환경의 정년 연장 소식에 노하우 문의가 쇄도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원환경 노조가 이뤄낸 성취는 노동계에서 드문 사례다. 경영계가 계속고용에 높은 벽을 쌓고 있어서다. 계속고용은 정년 연장, 퇴직 후 재고용, 정년 폐지 등을 모두 포괄한다. 고령화에 계속고용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 세계일보 취재 결과, 정년제를 운영하는 기업 10곳 중 6곳은 정년 연장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부담’과 ‘고령자는 업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가 절반을 훌쩍 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이달 발간할 예정인 ‘정년제 계속고용제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중 정년 제도가 있는 기업은 31.2%, 나머지 68.8%는 정년 제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86.7%는 정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조사는 5인 이상 사업체 3066곳을 표본 추출해 지난해 11월15일부터 12월5일까지 진행됐다.

 

현재 정년제를 운영하는 기업 중 정년 연장 계획에 관해 ‘계획 없음’ 응답이 59.6%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 ‘임금피크제 등 임금을 조정하면서 정년 연장’(32.8%), ‘임금조정 없이 정년 연장’(7.2%), ‘기타’(0.4%) 순으로 나타났다.

 

◆경영계 ‘인건비 부담’에 반대 고수

 

정년 연장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에 그 이유를 묻자 ‘인건비 부담 증가’(27.0%)가 가장 많았고, 그 외에 ‘사업장 업무가 고령자와 맞지 않아서’(26.9%), ‘고령자의 생산성 하락’(19.0%)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정년 연장 ‘찬성’이 압도적이다. 올해 5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전국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만 65세까지 연장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86%로 ‘반대한다’(11%)는 응답을 압도했다.

 

기업들은 고령자 계속고용 방식으로 ‘정년 연장’보단 ‘재고용’을 선호한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직원 30인 이상 기업의 67.9%가 선호하는 고령자 계속고용 방식으로 ‘재고용’을 꼽았다. 정년 연장은 25.0%, 정년 폐지는 7.1%였다.

 

기업들은 정년 연장을 택할 바에 재고용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재고용에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 실태조사에서 기업들은 재고용에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은 17.5%, 운영하지 않은 기업은 82.5%였는데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기업들은 재고용 제도 운영 계획에 대해 80.9%가 ‘운영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경영계는 정년 연장, 재고용 등 계속고용 논의를 위해 임금 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임금 체계가 개편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자 계속고용 논의는 기업에 부담을 준다”며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임금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취업규칙 변경 절차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세대 갈등 불씨’도 정년 연장 논의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는 요소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으로 “청년층이 대기업·공공기관을 선호하는 점에서 정년 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청년층 일자리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계속고용 장려금 확대해도 수요는 제자리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노사 간 견해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60세인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논의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사노위는 6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를 발족했다.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해 노사가 논의하면 여론을 수렴해 하반기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속도를 낼 필요성은 더 커졌다.

 

정년 연장 등 노동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반응도 지배적이다. 한국노총은 연금개혁안에 대해 “지금도 국민연급 수급시기까지의 소득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년 연장만이 해결책”이라고 논평했다.

 

정부는 정년 연장 등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계속고용을 독려하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의 ‘계속고용장려금’ 제도도 그 일환이다. 2020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형태로 중장년층 근로자를 계속고용한 중소·중견기업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지난해까지 최대 2년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근로자 1명당 최대 3년간 1080만원(분기별 90만원씩 1년간 360만원)으로 올해 지원이 확대됐다.

 

정부가 지원을 늘려줬는데도 수혜 인원은 올해 되레 줄었다.

 

2022년 7994명, 지난해에는 7888명이 지원받았는데 올해는 지난달까지 6149명이 지원받아 지난해 동기(7100명) 대비 13% 감소했다. 지난해와 달리 지원 대상이 ‘최소 근속 기간 2년 이상’으로 강화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부는 내부적으로 올해 1만1636명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고용노동부. 연합뉴스

고용부는 다음 달 중 계속고용 장려금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개편안의 기본 골자는 ‘요건 합리화’다. 현재는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가 5명이고, 계속근로 희망 인원이 3명일 때 3명을 전부 재고용해야만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개편안은 희망자 중 일부만 재고용해도 장려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조금 제도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계속고용 장려금은 특정 기업이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한 시점부터 받는 보조금으로, 장기적인 정책 대응으로 보기 어렵다”며 “지원 규모도 전체 정년퇴직자 규모를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령자의 인적 자본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자리로의 재취업보다 주된 일자리에서 고용 연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 원장도 △정년 폐지로 늦게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안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 중 마지막인 연장 방안이 보편적인 혜택을 확산하는 데 가깝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법적 정년 65세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연장하면서 동시에 70세까지 재고용 촉진 제도를 만들되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보호 장치와 촉진 장치를 갖추는 것을 해법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민·이진경·안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