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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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생각을 대체하는 시대… 지식은 왜 존재해야 하나

지식의 탄생/ 사이먼 윈체스터/ 신동숙 옮김/ 인플루엔셜/ 2만9800원

 

무지의 총량은 항상 지식의 총량보다 더 크다고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는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 이전까지 현생 인류나 우리 조상은 지식을 거의 전적으로 경험에만 의존해 왔다는 점에서 포퍼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는 지식의 축적과 전달 양상이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인터넷과 인공지능(AI)을 통해 단 몇 초 만에 찾고자 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전송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을 깃털처럼 가볍게 터치만 하면 거의 모든 주제의 거의 모든 지식을 즉시 불러올 수 있다.

손끝으로 수많은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 지금, 우리에게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최초의 인간 이래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지식을 쌓아온 인간의 뇌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이먼 윈체스터/ 신동숙 옮김/ 인플루엔셜/ 2만9800원

‘세계를 바꾼 지도’, ‘완벽주의자들’ 등을 통해서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책 ‘지식의 탄생’에서 지식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인류에게 전수되었는지, 그 전달 수단이 수천 년 동안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지식의 미래를 조망한다.

저자는 우선 ‘안다는 것’, 즉 지식이란 무엇인가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지식의 정의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오랫동안 지지를 받은 것은 2400년 전 플라톤의 그것이었다. 플라톤은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18세기 칸트는 지식을 다시 추론과 이론을 바탕으로 한 선험적 지식과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험적 지식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저자는 이어 경험과 관찰 등을 통한 지식의 형성을 시작으로, 언어와 교육, 매체를 통한 지식의 전승, 도서관과 백과사전, 인터넷 등을 통한 지식의 유통과 확산 등 다양한 층위의 지식 탄생과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핀다.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 경험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지식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 백과사전과 정보 검색의 탄생,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해주는 현대의 AI까지….

최근에는 AI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AI 알고리즘은 우리가 구매할 만한 상품을 제안하고, 수천 수만 명의 군중 속에서 얼굴을 골라내 여권 번호와 혈액형, 운전기록과 병명을 확인해준다. 우리가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영화를 볼지 의견을 제시하고 사실상 이끈다.

그렇다면 지식의 미래, 인류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자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AI 컴퓨터 HAL이 선장 데이브를 비롯해 인간을 완전히 장악한 것을 상기시키며 암울한 미래의 일단을 슬쩍 내비친다. “컴퓨터는 ‘생각은 우리에게 맡겨라’라는 슬로건 아래 인간을 감금하고,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 인간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 기계가 모든 것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 그리고 기계는 우리를 애완동물로 키울지도 모른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