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北 우라늄 농축시설 첫 공개…美 대선 앞 도발 대비 만전 기해야 [논설실의 관점]

빼곡한 원심분리기 핵 무력 과시
7차 핵실험·ICBM 발사 가능성
대비 태세 강화, 도발 의지 꺾어야

북한의 벼랑 끝 도발이 노골화하고 있다. 북한이 어제 핵탄두제조에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북한이 2010년 핵물리학자인 미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를 대외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면서 “정말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며 “전술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했다.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무력을 과시하면서 사실상 7차 핵실험 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예고한 것인데 북한의 무모한 핵 위협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매체가 게재한 사진에는 우라늄을 무기용으로 농축하는 원심분리기가 빼곡히 들어선 모습이 담겨있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과 강선 등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연간 80∼100kg의 HEU를 생산하고 있다. 보유 핵탄두는 현재 90여발에 이르며 2030년에는 160발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 복원 공사를 마쳐 김 위원장이 결심만 서면 언제든지 핵실험 버튼을 누를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의도를 읽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차기 정부를 향해 핵무기가 많다는 증거를 들이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토록 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 협상을 압박하려는 속셈이다. 2002년 북핵 위기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핵·미사일 도발로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가 평화공세를 취하는 건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다. 북한은 핵무기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핵 동결을 대가로 대북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챙길 수 있다는 기대는 망상이다. 외려 국제적 고립과 고강도 대북제재만 자초할 따름이다. 

 

대남도발도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북한은 그제 평양 일대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쏴 동해 상으로 360여km나 날려 보냈다. 발사방향을 남쪽으로 돌리면 서울·대전 등 대도시와 주요 군사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다. 지난 5월부터 시도 때도 없이 쓰레기 풍선을 남쪽으로 살포하더니 최근에는 발열 타이머 장치까지 달아 수도권에서 화재를 유발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형 600㎜ 방사포차 성능검증을 위한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망동을 제어하기 위해 비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통일부는 어제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한반도와 세계평화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미 국방부 장관은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도 북한 핵, 탄도미사일 계획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긴밀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필요한 때다. 한·미는 북핵 위협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7차 핵실험 등 예측 가능한 도발 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 군도 실전 훈련에 기반해 국방력을 압도적으로 키우고 확고한 대비태세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어야 한다. 차제에 정부는 미국과 지속적 협의를 통해 최소한 일본 수준까지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