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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급 소화기를 아십니까?…제대로 된 안전 교육이 필요한 이유 [뉴스+]

금융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유모(30)씨는 건물에 들어가면 비상구나 소화기 위치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다. 유씨는 “군대에 있을 때 소방 훈련을 매일 받았더니 버릇처럼 됐다”고 말했다. 유씨는 “직장에서 화재 대피 훈련이나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과거 훈련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회사에서 기본적인 화재 대처 훈련이나 안전 교육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를 포함해 대형 화재 사고가 반복되면서 소화기나 위험물 분류 등 안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온라인에선 금속화재 진압용인 ‘D급 소화기를 처음 알았다’며 화재 종류에 따른 소화기 사용법을 묻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내 소방 훈련·안전 교육이 형식적”이라는 볼멘소리가 잇따르는데 위험도가 낮은 업종은 안전 교육 의무조차 없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근로자에 대한 정기적인 안전보건교육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개인정보 보호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퇴직연금교육과 함께 5대 법정의무교육이기도 하다. 사무직 근로자는 반기마다 6시간 이상, 일용직 근로자는 채용할 때마다 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곳에 모아 현장교육을 하거나 온라인·비대면 교육 등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교육 대상자에 따라 최대 5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보건교육은 모든 사업장에서 실시해야 하나 위험도가 낮은 업종과 5인 미만 사업장 등은 교육 의무가 일부 면제된다. 금융·보험업과 전문 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회복지 서비스업 등 상당수 업종은 안전보건교육 의무가 없다. 근로자 업무가 위험하거나 유해한 작업으로 바뀔 경우에만 특별교육을 하면 된다. 고압실 내 작업과 건설용 리프트를 이용한 작업 등 39종에 해당해야 하는데 사무직 근로자가 맡을 일이 많진 않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모(31)씨는 “입사 전 교육 때 짧게 영상을 본 걸 제외하면 안전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영상도 업무나 사업장과 동떨어진 원론적인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 있는 박모(40)씨도 “교육도 형식적”이라며 “적어도 소화기 시범 정도는 보여주는 정기적 교육이 필요한데 화재 사고를 여러 번 겪었음에도 안일하다”고 했다.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하면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적용됐으나 안전보건교육 의무 대상은 달라진 게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상 교육 의무는 산안법상 의무를 의미하기 때문에 산안법에 따른 대상자가 아니면 중대재해법에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상 안전 확보 의무는 교육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내에서 평가한다는 게 고용부 설명이다.

지난 3월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열린 2024년 지역특성화 재난대비 민방위 훈련에서 참가자들이 소화기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뉴시스

산업안전보건교육 의무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다른 관계자는 “교육 의무 대상 확대는 영세 사업장 등을 고려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의무 확대보단 사업주가 교육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할 방안 등을 다각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교육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내게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리튬배터리처럼 위험성을 모르는 ‘안전 무지(無知)’도 문제”라며 “이는 교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과)는 “교육 제도를 합리화하면 일부 업종을 제외할 필요가 없다”며 “획일적으로 교육 시간까지 과잉 규제하다 보니까 현장에선 형식적인 교육만 이뤄지고, 교육 의무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사무직이더라도 운반 작업을 하면 안전 교육을 하는 등 업종마다 상황에 맞는 교육을 하도록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