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에 김 여사와 대신증권 직원이 통화한 녹취록 내용을 포함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적어도 시세조종에 활용된 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인지했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향후 검찰 수사의 초점은 김 여사의 거래 인지 여부를 넘어 시세조종 인식 여부를 규명하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 안승훈 심승우)는 전날 이 사건 주범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모든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김 여사의 계좌 3개와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의 계좌 1개가 시세조종에 동원됐다고 명시했다. 항소심 판결문엔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 거래와 관련해 2010년 10월28일 김 여사가 대신증권 직원과 통화한 녹취록도 언급됐다.
해당 녹취록에는 대신증권 직원이 “예, 교수님(김 여사). 저, 그 10만주 냈고”, “그, 그거 누가 가져가네요”라고 하자 김 여사가 “아 체, 체결됐죠”라고 답한 내용이 담겼다. 이어 직원이 “예, 토러스 이쪽에서 가져가네요. 보니까”라고 하자 김 여사는 “그럼 얼, 얼마 남은 거죠?”라고 묻는다. 직원이 “이제 8만개 남은 거죠”라고 하자 김 여사는 “아, 아니 그니까 그거 나머지 금액이 어떻게 되냐고요”라고 반문한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거래 결과와 금액을 사후적으로 확인하거나 증권사 담당자가 김 여사에게 사후보고를 하고 있을 뿐이고, 권 전 회장 주장대로 김 여사가 맡긴 증권사 담당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내용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녹취록은 자신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거래가 아니라는 권 전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세조종에 활용됐다고 인정하는 논거로 제시됐다.
이는 도이치모터스 2차 주가조작 시기(2010년 10월21일 이후) 시세조종에 활용됐다고 인정된 대신증권 계좌의 거래를 김 여사가 충분히 인지했다고 본 것이기도 하다. 다만 거래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혐의 유무가 결정되는 건 아니다. 시세조종 방조 혐의가 인정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주(錢主)’ 손모씨의 경우, 재판부는 “손씨가 권 전 회장의 주가조작 범행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지하면서 수십억원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시세조종 사실까지 알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방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2심 재판부가 김 여사의 대신증권 계좌의 경우 권 전 회장에게 투자를 일임한 케이스라고 판단한 점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재판부는 “권 전 회장 등의 관여하에 거래가 이뤄지고, 증권사 담당자는 그 지시에 따라 주문 제출만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 여사가 거래 결과와 금액을 사후적으로 확인할 뿐, 거래 자체는 권 전 회장 등의 의사 관여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