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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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인근 수목장 허가에 주민들 ‘현직 군수 악행비’ 설치 논란

전남 함평군 마을 주민들이 군수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을 인근 사찰의 수목장을 인·허가했다는 이유로 ‘악행비’를 세워 논란이 일고 있다.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3개 마을 주민들은 12일 조계종 용천사 입구 마을 사유지에 악행비를 세웠다. 악행비는 빨간색 글씨로 ‘불통·이상익 함평군수 악행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악행비 밑에는 ‘분통함으로···’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마을 주민들은 최근 2개월간 10차례의 대책회의와 두번의 마을 전체회의를 거쳐 이같은 악행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악행비가 세워진 장소는 12일 개막한 함평 모악산 꽃무릇 축제장 주차장 인근으로 축제장을 찾는 방문객들이 볼 수 있는 장소다. 주민들은 악행비를 세우게 된 경위를 담은 표지판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주민 80여명이 악행비를 세운 데는 함평군이 마을 인근에 있는 사찰에 수목장 인허가를 해 준 게 발단이 됐다.

 

광암리 광동마을 300m쯤 떨어진 용천사는 사찰 소유 부지에 4946㎡규모 수목장형 자연장지 조성 인허가를 지난해 10월 함평군에 신청했다. 함평군의 최종 인허가가 나지 않았으나 용천사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최저 150만원부터 최고 6000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수목장 분양을 홍보하고 있다.

 

광암리 주민들은 당초 관광시설 개발을 통한 마을 발전을 기대했으나 수목장으로 인해 마을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하며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 주민은 “25년간 함평군이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관광 개발이 이뤄졌는데 수목장이 들어서면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초만 해도 수십 건에 달하던 토지 매입 문의가 뚝 끊겼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올해 초 이상익 함평군수를 면담하고 함평군청 앞에서 수목장 조성 반대 집회도 가졌다. 지난 3월에는 함평군청을 상대로 수목장 인허가 반대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지역 축제가 시작되는 날 비석을 설치하고 다음날 다시 집회도 열었다.

 

악행비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주민은 “수목장이라지만 묘지인데 주민들 의견 청취도 필요해 보인다”고 찬성했다. 하지만 또 다른 주민은 “불만이 있더라도 축제날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흉한 비석을 세우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다.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함평군은 군수 이름이 새겨진 악행비 설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함평군 관계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수목장 인허가를 임의로 막을 수 없고, 주민의견 수렴도 필수가 아니다. 화장장과 달리 수목장은 거리제한 규정도 없다”면서 “비석에 군수 실명이 들어간 만큼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해당하는지 법률 자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민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 차례 면담을 통해 당사자간 협의를 이끌어보려 했으나 양측 입장이 팽팽해 진전되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축제장을 찾는 지역민과 관광객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돼 너무나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함평=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