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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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갈등, 입법화로 풀자 [알아야 보이는 법(法)]

올해 초부터 ‘의료대란’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8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해결 기미가 없다. 최근 응급실 진료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의료진 소진이 이어진다면 응급실은 물론이고 중환자실이나 수술장 등 다른 진료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 상황이 조속히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정상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별로 입장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입장 차이가 단기간 내 좁혀질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에는 타협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또 이행되는지에 대한 방식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앞서 2014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2차 의정협의서를 보면 ‘의사보조인력(PA) 양성화 추진 중단’이라는 소제목 아래 PA의 합법화는 의협 및 대한전공의협회와 사전 합의 없이 재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2020년 보건복지부와 의협 간 합의문 1항에 의하면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 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안정화 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한다. 이 경우 의협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협약에 따라 구성되는 국회 내 협의체의 논의 결과를 존중하며,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PA 합법화나 의대 정원에 관해 이런 합의가 지켜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지켜지지 않았다고 보는 쪽에서는 문서로 명문화된 합의도 지켜지지 않았는데, 이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타협할 이유가 있는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 합의가 있더라도 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는 이상 정책 합의는 필요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다시 타협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 확답을 주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의대 정원 이슈를 해결하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로 입법화를 들 수 있다.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법으로 규정할 때는 국회에서 해당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개진되고 반영될 수 있다. 절차도 상당 부분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법안이 발의되는 시점부터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과정을 고려하면 하루아침에 법이 갑자기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일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판사정원법이나 검사정원법과 같이 정원 자체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의사는 공무원이 아니고 의대생은 더욱 그러하다. 의대 정원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고려하면 적어도 총 정원 정도는 법에 직접 규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의료개혁과 관련해 입법이 논의되고 있는 주요 사항 중 하나가 의료사고에 대한 특례법을 만들 것인지 여부다. 의사단체와 환자단체 간 의견이 다른 것으로 보이고, 정부도 지난 2월쯤 제정안까지 발표했으나 아직 법안 발의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발의된다면 세부적인 조항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히 특례의 의미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자.

 

어떤 의무가 주어지면 크게 3가지 정도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첫번째는 의무를 지키는 것이고, 두번째는 위반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부담하지 않기 위해 그 의무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시설의 소유주에게 그 시설에 대한 수선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고 만약 위반하면 벌금을 부과한다고 치자. 그 시설의 소유주는 수선의무를 이행할 수도 있고, 이행하지 않고 벌금을 낼 수도 있고,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 그 시설을 철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반응을 고려해 법적 의무를 둘지, 둔다면 그 정도를 어떻게 설정할지 정해야 한다.

 

의료사고 시 민사에 대해선 몇차례 ‘무과실책임’(손해를 발생시킨 특정인에게 고의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법률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법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산업재해나 학교 안전사고도 무과실책임주의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환자의 피해 보전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반드시 무과실책임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같이 과실책임 제도를 유지하거나 무과실책임으로 전환하거나 어떤 경우이든 일종의 자동차보험과 같이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기관의 배상책임과 환자에 대한 상해보험 내지 생명보험의 성격을 가진 보험을 같이 도입하면 환자의 피해는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의 피해 총액이 100이고 이 중 의료기관의 책임이 30이라고 한다면, 30은 의료기관의 배상책임 보험으로 보장하고 나머지 70은 상해보험 내지 생명보험을 통해 보장받는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과실책임과 무과실책임의 차이는 배상책임 보험과 상해보험 내지 생명보험 사이의 보험금 분담비율 차이 내지 보험별 배상 한도라고 볼 수 있다.

 

보험료는 가입자가 납입하는 총액과 보험회사가 지급한 보험금과 경비의 총액이 같은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수지상등의 원칙’으로 정해지므로, 진료비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22년 기준 자동차보험으로 지급된 손해액 총액이 14조 1454억원이었는데, 같은해 건강보험에서 약국을 뺀 의료기관에서 요양급여 비용 즉 보험이 적용됐을 때 공단 부담분과 본인 부담분 합계액이 84조5473억원이었다. 의료사고로 1년에 자동차보험 전체 정도의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요양급여 비용의 20% 정도를 추가 부담하면 될 정도다. 아마도 그 정도까지 의료사고로 인한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보험의 보험료는 전체적으로 현재와 같이 의료기관의 배상책임 보험만 있을 때보다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부가가치세 방식과 같이 납부는 의료기관이 하되 실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이용자가 되는 방식으로 징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분만사고에 대해 무과실책임으로 보상하는 산과의료보상제도를 운영한다. 운영기관이 분만당 일정 비용을 의료기관으로부터 징수하지만, 실제로는 의료기관에서 분만비용을 수납할 때 위 보험료까지 같이 청구하거나 분만비용에 포함하고 있다.

 

보험료를 진료비와 별도 징수하면 이용자의 실제 지출비용은 증가할 수 있다. 다만 만약 무과실책임으로 전환되면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 지금처럼 과실 여부를 둘러싸고 장기간 불확실한 상황에서 분쟁에 휘말리는 유·무형의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의료진도 거액의 금전적 위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과실책임으로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환자 측 피해는 어떠한 보험에서든 보장받는 것이므로 경제적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의료진도 환자 측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형사책임에 대한 특례는 물론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형사처벌이 필요한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형사처벌이라는 제도를 두었을 때 의료진 개개인이 어떤 반응을 보여왔거나 앞으로 보일지 염두에 둘 필요도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2019년까지만 해도 1년에 200명 안팎의 정원을 채우는 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20년 지원율이 78.5%로 하락한 뒤 2021년 37.3%, 2022년 27.5%, 2023년 25.0%를 각각 기록했다.

 

이번 의료대란 이전에도 최근 몇년 동안은 서울 시내의 유명 대학병원조차 연차에 따라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1명도 없는 일이 있었다. 이는 분산해 지원하면 1인당 업무부담이 너무 큰 탓에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희망하는 의사끼리 미리 지원할 병원을 의논했기 때문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 12월 한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사건의 여파를 이유로 드는 분석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건 탓으로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만약 해당 사건이 없었다면 단기간에 저 정도의 급락을 보였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현재 의료사고는 경과실로도 책임을 묻기 때문에 이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수를 하지 않든가, 실수하더라도 결과와 인과관계가 없어야 한다. 실수하지 않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인과관계도 마찬가지다.

 

의사는 살리거나 치료해 회복할 수 있는 확률이 있는 이를 살리거나 치료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으므로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책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의사들이 늘어나더라도 어쩔 수 없다거나 제도 자체는 유지하면서 운용 단계에서 의료진의 부담이 감소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제도를 유지한다면 아마도 지금까지의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논의를 통해 이번 사태가 조속히 종식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