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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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던진 제헌절 화두는 ‘투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7월4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인 1776년 7월4일 당시만 해도 영국 식민지였던 북미 대륙의 13개주(州) 대표가 모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독립을 선언했다고 바로 독립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조지 워싱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독립군이 영국군을 상대로 수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유럽 대륙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영국과 대립하던 라이벌 프랑스가 미국과 동맹 조약을 체결한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781년 10월 버지니아주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이 미국·프랑스 동맹군에 항복하며 독립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의 대학 교육 관련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는 도중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렇다고 미국이 바로 독립국이 된 것도 아니었다. 영국과 미국 간에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평화 조약 체결을 놓고 지리한 외교적 공방이 벌어졌다. 1783년 9월에야 프랑스 파리에서 협상이 타결됐다. 이로써 이미 미국 독립을 승인한 프랑스에 이어 영국도 미국을 정식 국가로 받아들였다. 당시 세계는 유럽이 주도하고 있었고, 그 유럽에서도 가장 강대한 세력이 바로 영국과 프랑스였다. 두 나라로부터 외교적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갓 독립한 신생국이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가라고는 하나 독립 직후의 미국은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지닌 13개주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다. 연방국가로서 미국을 규율할 헌법이 필요했다. 1789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훗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불리게 된 이들이 모여 헌법 제정에 관해 의논했다. 이를 ‘제헌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라고 부르는데 당대의 지성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이 논의를 주도했다. 핵심 관건은 정부 형태였다. 영국처럼 국왕을 두고 의원내각제로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국왕이 없는 공화정을 실시할 것인가. 격론 끝에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국민이 뽑는 공화국 출범이 확정됐다. 초대 대통령에는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 장군이 선출됐다.

미국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왼쪽)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제헌회의가 정부 형태는 물론 시민의 권리와 의무까지 규정한 미국 헌법을 채택한 날은 1789년 9월17일이었다. 이를 기념해 미국은 매년 9월17일을 공휴일인 ‘헌법의 날’(Constitution Day) 그리고 ‘시민의 날’(Citizenship Day)로 지정해 기린다. 제235주년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국이 변곡점에 서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을 향해 “우리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 50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중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뜻이다. 바이든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투표권 보장이 시급하다”는 말로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당연히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