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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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게임 카드 또 꺼내는 北… 美 대선 전후 도발 살펴보니 [이우승의 이슈 돌아보기]

북한이 또다시 위험한 핵게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은 13일 핵탄두 생산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 공개했다. 미국 대선 50여일을 앞두고 전격적인 HEU 제조시설 공개다. 북한 특유 ‘벼랑 끝 전술’이다. 대화와 협상을 원할 때 상대방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인 존재감 과시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 전술이다. 미 대선 전후 북한이 7차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HEU 제조시설 공개도 미 대선 후 핵담판을 상정한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일 뿐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기지를 현지 지도하며 핵탄 생산 및 현행 핵물질 생산 실태를 료해(점검)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전망계획에 대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라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조 바이든 취임 기자회견 전날 도발···전술 핵무기 탑재 미사일 도발  

 

북한은 과거 여러 차례 미 대선 전후 대담한 도발을 시도해왔다. 3년 전 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서도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도발을 시도한 바 있다. 북한은 2021년 3월 26일 전술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신형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 상으로 쏘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65일 만에 이뤄졌고, 취임 기자회견 전날이다. 북한이 도발한 신형 탄도미사일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개량형으로 사거리가 최대 600km에 이른다. 2.5t 탄두에 1000개 이상 자탄을 담은 확산탄으로 공격할 경우, 축구장 150개 크기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이다. 사정거리에 있는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와 성주 사드 기지가 한 방에 무력화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하노이 핵담판이 무위로 돌아간 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핵 대응 전략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취임 직후부터 바이든 행정부 측은 북핵에 대해 강경노선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던 탓에 강력한 도발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과정에 북핵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트럼프 때는 취임 23일 만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도발 

 

전임 트럼프 대통령 당시에는 취임 23일 만에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20일 취임식을 가진 바 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그해 여름부터 수차례 미국을 겨냥한 ICBM 도발을 시도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벼랑 끝 전술을 이어갔다. 2017년 7월 4일 화성-14형 ICBM급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데 이어 7월 28일에는 자강도 무평 기지에서 화성-14형 ICBM급 미사일을 또다시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추정 사거리가 1만km에 달했다. 이어 8월 29일엔 평양 순안공항 인근에서 화성-12형 ICBM급 미사일 또 발사했으며 이 미사일은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낙하했다.

 

북한은 그해 9월 3일 제6차 핵실험을 시도했고, 11월 29일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화성-15 발사에 성공했다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2차례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포기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결국 북한은 영변 외 핵시설 추가 해체와 동결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2차 핵담판에서 영변 외 핵시설에 대한 추가 동결과 해제를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거절했다. 

북한이 평양국제비행장에서 ICBM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평양=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은 당시 영변 핵시설 동결 정도의 수준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노렸지만, 다른 곳의 핵시설이 운영되고 있다면 이는 사실상 협상 당사자들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없다. 이번 HEU 제조시설 공개도 또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에 공개한 제조시설이 위치한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 정보당국이 비밀 핵시설로 지목해 온 평양 인근 강선 단지일 가능성이 있다.

 

2019년 하노이 핵 담판 당시에도 미언론은 평양 인근 강선 지역에 수천개의 원심분리기를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 현행 생산을 위해 능력 확장을 진행하고 있는 공사현장을 돌아봤다”고 했는데 강선 단지 확장 정황이 국제사회에 최근 포착되기도 했다. 

 

◆11월 미 대선 전후 북 중대도발 가능성···한·미 당국 대응 논의  

 

특히 전문가들은 단계적으로 북한이 도발 시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북한은 12일 한국 주요 군사시설과 도시를 겨냥한 탄도미사일 수발을 시험 발사했다. 이번 HEU 시설공개는 도발 고도화를 위한 중간단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11월 미 대선을 전후해 7차 핵실험이나 ICBM 정각 발사 등 중대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응 방안을 협의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5차 한·미 외교·국방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고위급 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차관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 증진을 멈추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GPS 교란이나 오물풍선 살포 등으로 지속해서 도발하고 있다”며 “북한이 미 대선을 전후로 중대한 도발을 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양국의 평가”라고 했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