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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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상황실 ‘전원 SOS’ 빗발… 근무자 ‘환자 이송’ 고군분투 [추석 연휴 잊은 의료 현장]

연휴기간 평소보다 2배 전원 요청
“25주차 임신부 양수 터졌다” 신고
병원 75곳 문의 끝 5시간 만에 치료
손가락 절단환자 ‘광주→전주’ 이송

3∼8월 병원 간 이송 60분 넘긴 사례
2023년 동기比 22% ↑… 대도시서 급증

전공의 이탈로 촉발한 전국 병원의 응급실 위기상황이 확산하는 가운데, 추석 당일인 1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는 하루 종일 ‘응급실을 찾아달라’는 긴박한 요청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43분, 상황실엔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충북대병원발 교통사고 처리 요청이 접수됐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경부고속도로 청주IC 인근에서 발생한 6중 추돌사고로 자매 2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됐는데 10대 여성 환자에 대한 치료가 어려워 전원할 병원을 찾아달란 요청이었다. 왼쪽 얼굴을 심하게 다친 환자는 안와골절과 안면부 열상, 다발적 골절로 인해 시력 저하 증상도 나타나 안과와 성형외과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추석인 지난 17일 강원 춘천시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이송, 입실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상황실 근무자들이 전원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안과와 성형외과 응급치료, 입원 배후진료가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병원인 경기 남부의 한 군병원이 전원요청을 받아들였다. 전원될 병원까진 직선거리 90㎞, 예상 소요시간은 165분이었다. 환자는 사고 신고가 접수되고 4시간30분 만인 오후 1시43분쯤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중앙상황실에서 전원요청을 받은 상황요원은 “1분 1초가 급한 중환자들이어서 전원할 때마다 안타까운데 요즘 한 건을 해결하기까지 시간이 이전보다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상황실에선 전공의 집단사직에 따른 응급의료 공백 여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중증응급환자 전원을 위해 만들어진 ‘컨트롤타워’인 상황실에는 연휴 기간,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전원요청이 들어왔다. 요청 건수는 15일 72건, 16일 76건, 17일 61건으로 직전주 일요일인 8일(38건)보다 크게 늘었다.

연휴에도 자리를 지킨 의료진과 상황실의 긴밀한 대응으로 추석 대란 위기는 넘길 수 있었지만, 입원환자 격리 등으로 응급실이 마비됐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때에 비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온다.

 

차명일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응급실 의료진과 소방, 상황실 근무자들 협조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병·의원이 연휴에 문을 닫으면서 추석 연휴 서울의 주요 상급종합병원에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도 한때 환자가 몰리면서 응급실 앞에 도착한 구급차가 40분간 대기한 후에야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응급실로 옮길 수 있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드문 지방의 응급 상황은 서울 등 수도권보다 심각했다. 연휴 첫날인 14일 충북 청주에서 양수가 터져서 119에 신고한 임신부가 5시간 만에 치료를 받았다. 이날 오전 11시25분쯤 청주에서 “25주 된 임신부의 양수가 터졌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119 구급대는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전국 75곳의 병원에 수용 여부를 문의했다. 하지만 의료진과 병상 부족 등의 이유로 이송이 거절됐다.

 

이에 소방본부와 충북도 비상의료관리상황반이 공조에 나섰다. 소방본부는 오후 3시50분쯤 도에 이런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도 비상의료관리상황반은 오후 4시12분 청주시내 모태안산부인과 원장에게 협조를 구해 신고 5시간 만인 오후 4시20분쯤 치료를 받았다.

 

도 비상의료관리상황반 관계자는 “산모와 직접 통화를 했는데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며 “임신 25주 임신부는 산모는 물론 아이도 위험할 수 있어 출산을 도울 병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대기환자 ‘북적’ 추석 전날인 16일 충남 천안시 쌍용동에 위치한 달빛어린이병원인 김종인소아청소년과 접수대 앞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어린이 환자 및 보호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천안=김정모 기자

전남 광주에선 병원 4곳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없었던 환자가 90㎞ 넘게 떨어진 전북 전주시까지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15일 오후 1시31분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50대 남성이 문틈에 손가락이 끼여 절단됐다.

 

119구급대는 대학병원 2곳, 종합병원 1곳, 정형외과 전문병원 1곳 등 광주권 의료기관 4곳에 문의했으나 이 환자를 곧바로 수술해줄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구급대는 전북지역 의료기관까지 수소문한 끝에 자동차로 약 1시간 8분, 94㎞ 거리인 전주의 정형외과로 환자를 이송해 사고 약 2시간 만인 오후 3시37분쯤 접합수술 등 치료를 받았다. 광주소방본부 관계자는 “대기 시간 없이 가장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광주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전주로 환자를 이송했다”며 “광주권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전에서는 4시간여 만에 천안 병원으로 옮겨진 환자가 있었다. 16일 오후 1시30분쯤 대전시 동구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말다툼하다 흉기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119구급대는 대전과 충남 논산시, 천안시 등 의료기관 10곳에 이송을 요청했으나 의료진 부족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 119구급대는 계속해서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사고 4시간여 만인 오후 5시41분쯤 천안시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올해 3∼8월 구급대가 응급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데 1시간을 넘긴 사례는 지난해와 비교해 22% 증가했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응급 환자가 발생한 현장과 병원 간 이송 시간이 60분을 넘은 경우는 전국에서 1만3940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1426건)에 비해 22% 증가했다. 특히 대전(164건→467건, 2.8배), 서울(636건→1166건, 1.8배), 부산(251건→400건, 1.7배) 등 대도시에서 이송 시간 증가 사례가 두드러졌다.


이정한·윤솔·이병훈 기자, 청주·광주=윤교근·김선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