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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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린 응급실… 가을·겨울이 더 ‘고비’ [뉴스 투데이]

큰 혼란 없이 넘긴 연휴

연휴 기간 응급실 내원 32% 감소
119 이송병원선정 건수는 늘어나

10~12월 골절·심뇌혈관질환 증가
현장선 “전공의 없어 의료 질 하락”

용산 “文 케어로 필수의료 어려움”
의협 “환자 응급실 자제 요청 겁박”

정부가 추석 연휴 5일 동안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평가했지만 필수의료 현장은 ‘의사 공백’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중환자가 급증하는 계절이 다가오면서 위기감이 여전하다.

 

보건복지부 정윤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9일 응급의료 일일브리핑에서 추석 연휴(14~18일) 5일 동안 응급실 내원 환자는 일 평균 2만6983명으로 지난해 추석 대비 32% 줄었고, 응급실 내원 경증환자는 1만5782명으로 지난해 추석보다 39% 감소했다고 밝혔다.

경증환자 진료 불가 19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경증환자 진료 불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추석 연휴 기간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의료개혁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 실장은 “전반적으로 큰 혼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중증환자 중심으로 응급의료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 발언대로 긴장을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소방청 일일소방활동상황에 따르면 추석 연휴인 16~18일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이송병원선정 건수는 251건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2023년 9월28~30일) 148건보다 103건 늘었다. 추석 당일은 올해 94건이 발생해 지난해(53건)보다 77%가량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위기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통상 긴 연휴가 끝나면 작은 병원에 있다 상태가 나빠진 환자들이 대학병원 등으로 전원을 많이 한다”며 “연휴 이후엔 응급실은 물론 중환자실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잘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을과 겨울에 위기가 계속될 것이란 지적은 추석 전부터 제기됐다. 9월까진 사실상 병원의 ‘비수기’고, 10∼12월에 심뇌혈관질환과 낙상에 따른 골절 등으로 응급실 내원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지방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국 대학병원에 ‘의국’이 사라져 대학병원 수준이 2차 병원급이 된 지 오래”라며 “전공의들이 밤을 새우고 환자를 봐준 덕에 의료 질이 올라간 것인데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국립대병원의 응급실 가동률(병상 포화지수)은 크게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에 따르면 전국 16개 국립대병원(분원 포함)의 지난달 응급실 가동률은 46.7%로, 지난해(70.6%)보다 23.9%포인트 감소했다.

19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을 한 환자가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의 응급실 가동률은 104.7%로 지난해 평균(99.1%)보다도 높았지만, 비수도권 14곳은 일제히 내려가는 등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컸다. 비수도권 14곳 중 응급실 가동률이 50%가 넘는 곳은 4곳에 불과했고, 충북대병원은 18.8%에 그쳤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연휴 기간 큰 혼란이 없었다는 정부 입장을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이날 “정부는 연휴를 앞두고 경증환자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경증·비응급환자에게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달라며 겁박에 가까운 미봉책을 펼쳤다”며 “환자가 줄었다며 의료대란은 없었다고 자화자찬하는데 황당함을 금치 못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의료 시스템 붕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실은 의료계를 향해 “대화의 장에 나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촉구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또 문재인정부가 2017년 시작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집행액이 폭증하며 국민부담이 커지고 필수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정재영·김유나·구윤모·조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