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우리가 전문인력인가요”

“기사가 나가서 제가 얻는 게 뭔데요?”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가장 무력해지는 순간은 이 질문을 들을 때다. 당신이 경험한 부조리를 알리겠다고,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개선의 단초가 될 수는 있다는 식의 답변은, 당장의 이득을 묻는 이들 앞에선 힘을 잃는다. 그들이 원하는 답은 “당신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겠다”인 걸 알지만, 책임질 수 없어 내뱉지 못한다. 해결될 거라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될 때까지 쓰겠다”가 최선의 답일 것이다.

조희연 사회부 기자

같은 이유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며 가장 겸손해지는 순간은 인터뷰이가 인터뷰 요청에 응해줄 때다. 기사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얻을 게 없는 이들이 인터뷰를 해줄 때는 더욱 겸손해진다. 노인일자리 사업 취재를 할 때도 그랬다. 노인일자리 사업 담당자로 일했다가 퇴사한 이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줬고, 근무할 당시 저장해둔 자료와 사진을 찾아내 공유해줬다. 이미 퇴사했기 때문에 기사를 통해 얻을 게 없는데도 말이다.

그 열정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느껴졌다. 인터뷰에 응한 노인일자리 담당자 모두 “노인일자리 사업은 어르신 삶에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노인일자리를 관리하며 어르신과 가장 많이 소통했기에, 어르신들이 노인일자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나 노인일자리 사업을 칭찬하면서도, 노인일자리 담당자 업무에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학을 뗐다. 업무량 대비 처우가 극악해서다.

정부는 노인일자리 업무지침에서 담당자 1인당 참여자 수를 150명으로 권장한다. ‘150’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서류가 아닌 인간관계에서 체감된다고 한다. 어르신 삶에서 노인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어르신들이 담당자에게 털어놓는 불만도 많은데, 150명의 민원을 받아내기가 힘겹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최저 수준이고 호봉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전문인력 양성방안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김가원 부연구위원은 연구를 진행하며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전문인력인가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 질문은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와 ‘전문가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가’라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김 부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낮은 처우 탓에 이직률이 높고, 전문성이 저해된다는 지적이다.

노인일자리 담당자 처우 문제는 2017년 국정감사 때부터 지속 제기됐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정부는 내년 노인일자리를 108만개로 늘리며 사업 예산을 1577억원 증액하면서도 담당자의 임금은 여전히 최저 수준으로 남겨뒀다.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사업 운영은 담당자의 열정에만 기대는 모습은 모순적이다. 열정이 바닥난 담당자가 퇴사하면서 노인일자리 관리체계는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곧 22대 국회가 국정감사를 시작한다. 올해는 구멍을 제대로 메워, 노인일자리가 좋은 취지를 이어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조희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