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을 둘러싼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이들 자산에 대체투자에 나선 금융사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펀드에 투자한 자금도 손실이 확정되자 일부 금융사들은 투자금을 돌려주고 나섰다.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금융사가 투자한 해외 대체투자 단일 사업장(부동산)은 34조5000억원 규모로 이 중 2조5000억원(7.27%)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 EOD는 채무자가 이자 또는 원금을 갚지 못하거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부족해 채권자가 만기 전 대출 원리금 회수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이지스자산운용이 2018년 10월 투자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트리아논 빌딩에서 EOD가 발생했다. 이 빌딩의 감정평가액은 2019년 12월 기준 6억6200만유로(9808억원)에서 지난해 8월 기준 4억5300만유로(6713억원)로 30% 넘게 감소한 상태다.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원금 대부분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래에셋그룹이 미국 워싱턴 소재 오피스 빌딩 ‘1801K’와 ‘1750K’에 투자한 펀드에서도 올해 상반기 EOD가 발생했다. 미래에셋 측은 2014~2015년 이 빌딩에 5750억원을 투자했는데 건물 가치가 절반 가까이 감소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관련 펀드의 잔액은 51억원까지 줄어 99%가 넘는 손실률을 기록했다.
신한대체투자운용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인수한 주거건물 ‘브로드스트리트20’에서도 지난해 9월 EOD가 발생했고, 작년 말 기준 20.5%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하나증권과 제이알투자운용이 투자한 아일랜드 더블린의 ‘넘버2더블린랜딩’에서도 지난 2월 EOD가 발생했다. 작년 말 기준 손실률은 72.4%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EOD 발생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2조3100억원에서 같은 해 12월 말 2조4100억원 등 분기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미국 부동산 공실률은 지난 6월 말 기준 오피스가 20.1%, 산업시설 6.5%, 아파트 5.7%, 소매 10.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금감원은 “재택근무 등으로 오피스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아 EOD 발생 사업장 증가 등 투자자산 부실화 가능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공모펀드의 수익률도 ‘마이너스’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16일까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270개 국내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8.2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자산 3332억원이 감소했다.
투자자들의 원성에 몇몇 증권사는 원금 일부를 돌려주는 조치에 나섰다. 하나증권과 하나은행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호텔인 마가리타빌 리조트 타임스퀘어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이 건물에 투자한 펀드 투자금이 지난해 전액 손실처리되자 투자자들에게 미상환 원금의 90%를 돌려주기로 했다. 같은 건물에 투자한 KB증권도 투자자들과 보상 수준을 조정하는 등 자율 배상(사적 화해)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1분기 기준 57조원으로 전 분기 대비 6000억원 감소했다. 향후 글로벌 금리 인하 추세에 힘입어 부동산 시장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증권사들은 일단 만기 연장에 나서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는 전체의 11.9% 수준이다. 2026년 32.0%, 2028년 24.0%, 2030년 9.5%, 2031년 이후 22.6%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는 총자산 대비 1% 미만”이라며 “손실흡수능력 감안 시 투자 손실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