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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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없는 나만의 레이스…힙한 청춘들의 ‘힐링 런’ [S스토리-MZ 러닝 열풍]

코로나 때 골프·테니스 인기
SNS 영향 ‘유행 운동’도 변화

경쟁 없는 나만의 레이스… 힙한 청춘들의 ‘힐링 런’

러닝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든 OK
진입장벽 낮고 운동효과 좋아 인기
앱으로 기록 바로 체크 성취감 커
“뛰다 보면 머리 맑아지고 해방감”

SNS 인증 ‘런스타그램’ 게시물 봇물
함께 도심 달리는 ‘러닝크루’도 활발
관련 용품·의류 판매량 전년比 13%↑

러닝 운동 효과와 주의점
도파민·엔도르핀 분출돼 우울증 치유
보폭보다 넓게 뛰면 무릎에 큰 무리
오르막·내리막길 과도한 반복 피해야

달리기 1분, 걷기 1분.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하고 마무리 걷기까지 마치면 23분이 걸린다. 오랜만에 달리기라 30초만 뛰어도 숨을 헐떡거렸지만 걱정했던 것보단 해볼 만했다. 첫 달리기는 이 정도, 다음엔 1분30초다. 노래 한 곡 듣고, 유튜브 ‘쇼츠(짧은 분량의 영상)’ 하나 볼 시간만큼의 달리기 시간이 4분, 7분, 10분으로 늘어난다. 어설프게 앞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달리기에 몰입한 자신을 볼 수 있다. 김지홍(29)씨는 “무작정 달리기엔 자신이 없어서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앱) 안내에 따라 뛰었다”며 “주변에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고 접근성도 낮아 보여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달리기 열풍이 거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당시 인기였던 골프와 테니스에 이어 달리기가 요즘 ‘대세’ 운동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준비물은 운동복과 운동화면 충분해 단출하고 언제, 어디서나 뛸 수 있다는 높은 접근성이 장점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앱에 바로 연동되는 달리기 기록을 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몸과 마음 건강에 효과를 보는 ‘러너’들이 많아지면서 너도나도 러닝 열풍에 뛰어들고 있다.

20∼30대를 중심으로 한 달리기 문화는 2010년대 중후반 한 차례 변곡점을 맞는다. ‘러닝 크루’(running crew·달리기 팀)들이 급속도로 많아지면서 ‘펀런(Fun Run·즐거운 달리기)’ 문화가 확산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게 일상이 됐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성장세와 맞물렸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다. 러닝 크루 인기와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은 스포츠 브랜드들도 러닝 열풍에 한몫했다.

2018년부터 서울의 한 러닝 크루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해 온 이모(38)씨는 “코로나19 전에 러닝 크루와 달리기 인기가 한창 높았을 때가 있었다”면서 “최근에 달리기가 다시 한 번 유행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골프와 테니스에 열광한 젊은 세대들이 늘어난 것도 SNS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SNS에 올릴 만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옷차림이 인기를 끌었고, ‘힙한 운동’이란 인식이 퍼지면서다. 테니스의 경우 국내 테니스 간판스타인 이형택 선수가 등장하고 아파트 단지 내 테니스장이 만들어지던 1980년대, 2018년 호주오픈 단식에서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를 꺾어 파란을 일으킨 정현 선수의 등장 때를 각각 1차, 2차 붐으로 본다. 3차 붐은 코로나19 때다.

◆“남들 아닌 내게 집중”

 

이번 차례는 다시 달리기일까. SNS에 ‘러닝’, ‘런스타그램’을 검색하면 수백만개의 게시물이 뜬다. ‘골린이(골프+어린이)’, ‘테린이’에 이어 ‘런린이(달리기+어린이)’가 곳곳에 눈에 띈다. 2022년 코로나19가 끝나갈 무렵 달리기를 시작한 이모(27)씨는 “취업준비로 살도 찌고 피폐해져서 여러 운동을 시도해봤는데 시간 대비 운동량과 가성비에서 달리기가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일례로 필라테스의 경우 그룹 수업 비용이 시간당 3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달리기는 짧은 시간에도 운동량이 많고, 운동 비용도 다른 운동보다 현저히 낮다.

 

달리기가 ‘힐링’이 된다는 의견도 많다. 달릴 땐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이 나와 행복한 기분이 들고 우울감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 자신은 런린이라는 박모(40)씨는 “달리다 보면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업무나 잡생각이 없어져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라고 달리기를 지속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제모(29)씨도 “건강해지기 위한 운동이면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라며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이 달릴 땐 다르게 보인다. 초록빛 나뭇잎과 하늘 색, 도로의 경사도에도 집중해 관찰하게 되고 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도 든다”고 했다.

 

서모(30)씨는 “달리기도 장비에 관심을 가지면 운동화에 큰 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배울 때 돈이 안 들고 여행 가서도 언제든 뛸 수 있어 꾸준히 하기에 좋다”고 했다.

 

◆“함께 달려요” 러닝 크루

 

같이 달리는 재미를 위해 러닝 크루를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러닝 크루는 주로 뛰는 코스들 외에도 매주 또는 격주로 코스를 바꿔가며 달리기를 한다. 한강공원이나 하천변 등 대표적인 달리기 코스뿐 아니라 도심을 달리거나 특이한 코스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별도의 신청 없이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오픈런’이나 친구를 초청할 수 있는 ‘게스트런’도 있다. 이전엔 ‘런예인’, ‘런스타’ 등 SNS 스타나 외모가 출중한 멤버를 모시는 데 적극적인 일부 러닝 크루들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시의 ‘7979 서울 러닝 크루’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러닝 크루를 운영하는 등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모임이 됐다.

 

모임이지만 ‘뛰고 싶을 때 뛸 수 있다’는 게 러닝 크루 장점이다. 다른 동호회들이 요구하는 규율도 거의 없다. 혼자 달리면 의지가 약해져 목표 도달 전에 포기하기 쉬운데 함께 뛰면 뒤처질 수 없다는 마음에 끈기가 생긴다고 한다. 선두에서 속도를 주도하는 ‘페이서’가 달리기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달리기 실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각에선 좁은 도로를 무리지어 뛰는 러닝 크루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모(27)씨는 “서울식물원에서 달릴 때 20명이 모여 뛰니까 길이 다 막힌 적이 있다”며 “갑자기 멈춰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땐 주위에 피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서씨도 “좁은 도로에서 두 줄로 달리는 건 보행자에게 위험하다”며 “특히 인도나 횡단보도에서 떼로 달리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러닝 크루들도 이런 비판을 인지하고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모(38)씨는 “러닝 크루 회원들도 혼자 달릴 때가 더 많아 문제점을 알고 있다”며 “20∼30명이 모이면 6명씩 소규모로 대열을 나누고 사람들이 많아지거나 도로가 좁아지면 한 줄로 뛰면서 속도를 줄이는 등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제씨도 “서로 배려하면 되는 문제고 지금까지 마주친 크루들은 대부분 안전에 조심해서 큰 문제로 보진 않는다”고 했다.

 

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관련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롯데 유통점 통합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년도 동기 대비 러닝(13%)과 축구(49%) 등의 종목에서 의류와 용품 구매액이 높았고, 골프(-4%)와 테니스(-15%)는 줄었다.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는 달리기의 경우 특히 의류 구매(26%)가 크게 늘었다. 스포츠 의류 전체 구매액 증가율이 1%대에 그쳤다는 걸 고려하면 증가세가 독보적이다. 용품·의류 구매 증가율은 20대에서 가장 높아 달리기에 유입된 젊은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명 러닝 브랜드의 인기 운동화는 내놓기가 무섭게 동나고 개인 간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

◆심폐기능 키우고 스트레스 줄여… 몸·마음 강해지는 ‘보약’

 

달리기는 체력 증진에 효과가 높고 엔도르핀과 도파민 등 ‘행복 호르몬’이 분비돼 우울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열정이 넘쳐 잘못된 방식으로 뛰다가는 무릎 관절을 다치기 일쑤다. 달리기 장점과 달리기를 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알아봤다.

 

19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규칙적인 달리기는 체중 관리와 심혈관 건강 개선 등에 도움이 된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골밀도를 높여 근육 강화에도 좋다.

 

달리기는 몸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달리기가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을 줄여준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줄여주고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엔도르핀 등을 분비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심박수 120회로 30분 이상 달릴 때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이런 뇌의 신경 전달 물질 분비에 따른 행복감으로 추정된다.

 

달리기는 하루 5∼10분만 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스포츠의학회에선 심폐 기능 향상을 위해 주 3일 이상 꾸준한 유산소 운동을 하라고 권한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곧 욕심이 날 수 있다. 기록을 단축하고, 더 긴 코스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부상 방지를 위해 달리기 장소와 방법을 꼼꼼히 점검하고 준비운동을 철저히 해야 한다.

 

야경과 함께하는 도심 달리기는 매력적이지만 시야가 나쁜 상태에서 울퉁불퉁하거나 아스팔트 같은 단단한 노면을 장시간 달릴 경우 엉덩이와 무릎, 발목 관절 등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과도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는 달리기 코스도 몸에 부담이 된다.

 

달리기 초보자거나 비만, 근골격계 질환이 있다면 빠르기 뛰기보단 가벼운 조깅이나 걷기가 효과적이다. 달리기 전후로는 5∼10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게 좋다. 가볍게 발목과 목, 어깨 등을 풀어주고 스쾃이나 런지 등으로 뛰기 전에 몸을 깨워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운동 후에는 허벅지, 종아리, 엉덩이 등을 천천히 늘여주는 스트레칭을 하면 통증과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달리기할 땐 올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상체는 곧게 편 상태에서 5도 정도만 전방으로 기울이고 앞을 바라봐야 한다. 팔은 ‘ㄴ’자로 가볍게 흔들면서 평소 보폭보다 좁게 뻗는다고 생각하고 달려야 한다. 초보자가 선수들처럼 보폭을 넓게 뛸 경우 무릎에 큰 무리가 갈 수 있다. 과욕은 금물이다. 달리기를 오래 즐기려면 자신의 체력과 신체 리듬, 몸 상태에 맞게 뛰는 게 좋다.

 

무조건 비싼 운동화보단 내 발에 맞는 운동화를 선택하고, 통기성이 있는 옷을 입는 게 좋다. 모자는 벗고 몸의 열이 발산될 수 있는 옷차림이 적절하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자외선 노출로 인한 피부 손상을 막기 위해 웃옷을 벗는 등의 맨몸 달리기는 자제하는 게 좋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