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연쇄폭발해 대규모 사상자를 낸 무선호출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돼 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까지 전달됐는지와 관련한 미스터리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폭발한 기기의 제조사로 처음 지목됐던 대만 기업이 관련성을 부인하는 가운데 대만 검찰은 압수수색에 나섰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첫 폭발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호출기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조사가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 이날은 불가리아 보안당국 등이 자국 내 모 업체의 ‘삐삐 폭탄’ 유통 개입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해당 업체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기반을 둔 컨설팅 회사 ‘노르타 글로벌’이 문제가 된 삐삐를 헤즈볼라에 판매하는 것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불가리아 공영 bTV 방송은 보안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거래와 관련해 160만 유로(한화 약 23억원)가 불가리아를 통해 헝가리로 송금됐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17∼18일 이틀간 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지급된 호출기와 무전기가 폭발하며 발생했으며 레바논에서만 40명 가까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다쳤다. 특히, 무선기기를 소지한 대원 인근에 있는 민간인이 다수 피해를 입으며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확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의 유력한 배후로 지목되는 가운데 호출기의 출처는 아직도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해당 기기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후 개입해 폭발물을 주입했을 가능성 등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아예 페이퍼 컴퍼니(유령 회사) 등을 내세워 직접 제품 공급망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일단 호출기 제조업체와 이 업체에 연결된 기업 등을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은 대만의 골드아폴로다. 폭발한 호출기에 이 업체의 상표가 부착됐기 때문이다. 1995년 창립한 골드아폴로의 주력 상품은 호출기와 무전기(워키토키)다. 이에 골드아폴로 측은 해당 호출기는 자신들이 제조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회사 ‘BAC 컨설팅 KFT’가 자신들의 상표를 사용해 해당 삐삐를 제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헝가리 정부는 BAC가 무역중계회사일 뿐 자국 내 제조시설이 없다며 “문제의 기기들은 헝가리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불가리아의 컨설팅 회사 ‘노르타 글로벌’이 개입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기업으로 지목됐고, 관련 조사는 불가리아와 이 회사의 창립자가 거주하고 있는 노르웨이로도 확대됐다. 노르타 글로벌의 창립자인 린슨 호세는 현재 노르웨이의 미디어 그룹인 ‘DN 미디어’에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노르웨이 경찰은 “밝혀진 정보에 대한 예비 조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대만 검찰도 골드아폴로와 BAC컨설팅 대한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20일 중국시보와 연합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대만 북부 타이베이 스린 지방검찰은 전날 국가안보 관련 범죄 등을 수사하는 법무부 산하 조사국과 함께 골드아폴로와 BAC 컨설팅의 대만사무소 등 4곳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압수한 제품 출하 기록, 계약 서류, 수출입 기록 등을 인용해 골드아폴로는 BAC 컨설팅이 판매한 호출기 한 대당 15달러(약 1만9000원)의 로열티를 받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헝가리 정부가 BAC 컨설팅의 해당 제품 제조를 부인했기 때문에 골드아폴로와 BAC 컨설팅의 협력관계, 제품의 흐름 파악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골드아폴로의 창립자인 쉬칭광 회장과 BAC 컨설팅 대만사무소연락 담당자인 우위전 아폴로 시스템스 대표 등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