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은 크게는 일차 두통과 이차 두통이 있습니다. 뇌종양 등 다른 질병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이차 두통’과 달리 일차 두통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두통 그 자체’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편두통은 여성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1∼12세에 급격하게 유병률이 올라갑니다. 이후 폐경기가 되면 또 드라마틱하게 줄어듭니다. 인생을 꽃피우는 시기에 두통으로 고통받는 거죠. 특히 성장이 이뤄지는 10대에 두통이 생기면 학업뿐 아니라 향후 인간관계, 사회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인생 전반기가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전체적인 삶이 망가지게 됩니다.”
나지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0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아청소년기 두통이 인생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두통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성인에 비해 결코 작지 않지만 성인과 달리 소아청소년의 두통은 ‘꾀병’이라는 인식이 강해 적기 대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본인의 통증은 그대로인데, 왜 아픈지는 모르고, 주변에서는 ‘정신력’을 강조하는데 학교생활조차 원활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로 또다시 두통이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나 교수의 환자 중에도 의욕이 넘치고, 공부도 잘하던 청소년 환자가 만성 편두통으로 ‘꿈을 포기하겠다’는 환자들이 많았다. 극심한 고통에 응급실을 드나들다가 한순간 의지를 놓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차 두통은 피검사, CT, MRI 검사 등을 통해 원인이 발견되니 치료도 받고 꾀병이라는 오해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차 두통은 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지 않으니 ‘공부하기 싫어서, 게을러서 핑계를 댄다’고 치부합니다. ‘아이들이 스트레스받을 일이 뭐가 있냐’고 하는데, 긴장성 두통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지만 편두통은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두통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유전적 경향은 있다. 최근에는 편두통 유발물질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환자가 통증이 발생할 때 피검사를 해보니 쏟아져 나왔다가 증상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유발물질이 확인됐다. 그렇게 발견된 두통 유발물질이 CGRP(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 외 5개가 있다.
이후 항CGRP표적치료제가 나오며 편두통 치료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두통 치료는 항CGRP표적치료제 개발 전, 후로 나뉠 정도다. 소아 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10세 이상, 40㎏ 이상이라면 처방이 가능하다.
나 교수는 소아청소년기 치료에서 단기적으로는 급성진통, 예방적 치료로 이런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생활습관 교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통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삽화형’이 아닌 ‘만성화’하는 경우, 당뇨, 고혈압처럼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생활습관 교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뇌가 소아청소년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뇌 용적은 일반적인 성인 뇌 용적의 25% 정도, 1세경에 성인 대비 70%로, 7세경에 성인 대비 95%로, 10세가 되면 아이들 뇌 크기는 성인과 거의 같아진다.
“의학적으로 뇌 신경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는, 흔히 ‘뇌가 말랑말랑하다’고 표현하는 ‘뇌 가소성’은 25세까지 급격하게 이뤄지고 25세부터는 정체를 이룹니다. 과거에는 25세 이후로는 뇌가 아예 안 바뀐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25세 이후에도 변화할 수 있다고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소아청소년 시기라면 효과가 더 좋은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만성질환 관리가 고령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청소년기에 생긴 이후 사라지지 않아 평생 관리해야 하는 두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생활습관변화(Lifestyle Modification)가 중요합니다. 생활습관변화는 이제 학문화가 됐습니다. 크게 수면, 수분섭취, 영양, 운동, 심리관리 다섯 분야가 있습니다.”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이 생활습관 교정의 핵심이다. 편두통 환자에서 땀이 날 정도의 경도 혹은 중등도의 운동은 편두통 예방 약제와 효과가 비등하다는 연구도 있다. 운동은 뇌의 염증성 물질을 감소시키고 엔도르핀과 같은 긍정적인 신경조절물질을 증가시킨다.
나 교수가 생활습관교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항CGRP표적치료제가 각광받고 있지만, 여전히 70% 정도에서는 효과가 없고 아직도 극심한 통증으로 응급실을 방문해 머리를 벽에 찧는 등 자해할 만큼 통증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있다. 새로운 유발물질이 발견되고, 이에 대한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그 치료제가 다시 소아 임상까지 끝내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데, 약 개발만 바라보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나 교수는 고통에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때로는 묵직한 ‘팩트 폭행’으로 정신을 다잡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두통을 말끔히 없애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두통뿐 아니라 인생의 어떤 고통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말끔하게 사라질 수는 없을 거라고 말해줘요.(웃음) 다만 ‘선생님이 너의 고통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으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잘 받아들이고, 생활습관 교정에 최선을 다합니다. 두통으로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이를 극복하고 일상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두통에 좋은 식단이 있다? 나 교수가 추천하는 ‘LGIT’
두통이 있는 소아청소년은 약물치료 외에 수면, 수분 섭취, 영양, 운동, 심리관리 등 생활습관 교정을 병행해야 한다.나지훈 강남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추천하는 식이습관은 저혈당지수 식이요법(LGIT·Low Glycemic Index Treatment). 그는 인터넷 카페 퍼플뷰티스(Pruple beauties)를 통해 구체적인 식단을 소개하고 있다.
LGIT는 극단적 뇌전증 식단, 즉 케톤생성 식이요법(케톤식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1900년대 초반에 나온 케톤식이는 극단적으로 높은 지방 비율로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뇌 과흥분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썼다. 이는 우리 몸의 다른 기관은 탄수화물, 즉 포도당만 에너지로 쓰는 데 반해 뇌는 포도당이 떨어지면 지방을 대사로 바꿀 수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 착안한 방법이다. 뇌전증 뇌세포는 포도당 대사를 주로 하고, 지방 대사는 거의 못 하기 때문에 뇌전증 세포의 에너지원을 끊어버리는 차원에서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그 대체재로 지방의 비중을 확 늘린 것이다. 정상적인 뇌세포는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뇌 흥분도를 높이지 않으며 지방으로 탄수화물을 대체하는 셈이다.극단적 케톤식이 이후 지방과 탄수화물 비율을 조절하며 뇌전증 외에 다양한 다이어트에 적용 가능한 식단으로 MCT(Medium-Chain Triglyceride diet), MAD(Modified Atkins Diet), LGIT 등이 나왔다. 최근 ‘조속노화’ 식단도 유사한 맥락이다. LGIT는 지방의 비율은 50∼65%까지 줄이고 통곡물 등 ‘혈당스파이크’가 없는 식품으로 구성된 탄수화물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대부분 탄수화물 65%, 단백질 15%, 지방 25% 수준임을 감안하면 큰 변화가 필요한 셈이다.
이런 식사 요법을 통해 첫 번째로 혈당스파이크를 줄일 수 있다. 또 올리브유 등 좋은 지방산을 통해 ‘흥분을 잘하는 뇌세포 네트워크’가 아닌 ‘차분한 네트워크’로 재건할 수 있다. 두통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뇌에서 나왔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 역시 뇌이기 때문에 이 전달을 억제토록 한다. 최근 만성 편두통 환자에서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는데 LGIT 식단은 미토콘드리아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나 교수는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LGIT 같은 식사 치료는 장내 세균을 유익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실험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며 “편두통은 머리가 아프면서 배도 아픈 경우가 많은데 배에서 장내세균이 좋으면 (위로 올라가는) 미주신경을 통해 브레인 네트워크가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