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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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105층 랜드마크 ‘포기할 결심’

현대차 초고층 ‘글로벌 콤플렉스’
테러·안전 이유 55층 2개 동 수정
서울시·주민들 “105층 사수” 압박
안전 택한 기업의 판단 존중돼야

언제인가부터 한국인에게 집은 아파트를 의미한다. 국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이제 단독주택은 집으로서 예외일 뿐이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를 가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심지어 시골에서도 20층 넘는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가 주변의 산과 높이를 두고 경쟁하기 일쑤다. 아파트는 날이 갈수록 대단위로 밀집되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나지막한(?) 사오 층짜리 아파트는 ‘연립주택’ 혹은 ‘빌라’라고 구별하여 차별한다. 고층 아파트에서도 저층보다는 높은 층을 선호한다. 특히, 꼭대기 층에 있는 ‘펜트하우스’는 같은 아파트라도 값이 훨씬 비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언제부터 한국인의 하늘 사랑이 이토록 극진했을까? 이 땅에 아파트가 생기기 전, 모든 한국인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물론 1층이었다. 요즘 아파트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합 주택도 없었다. 두 가족 이상이 하나의 건축물에 함께 사는 경우는 단독주택에 방 한두 칸을 다른 사람에게 세주는 때밖에 없었다. 한국 건축에서 2층은 희귀한 것이었다.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주합루처럼 궁궐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었다. 2층에는 구들을 놓을 수 없어 겨울철에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바닥 난방을 할 줄 몰랐던 서양이나 일본에는 이층집이 많았다. 서양에서는 3층을 넘는 건축물도 살림집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사용이 편리한 1층은 주인 차지였고 발품을 팔아야 했던 꼭대기 층은 하인들이 살게 했다.

 

이랬던 한국인이었는데 1980년대 이후 서울 강남 개발로 촉발된 아파트 건축 붐과 이로 인한 부동산 경제 활성화는 집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파트는 주택이면서 곧 돈을 굴리는 수단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살면 살수록 값이 오르니 이런 물건이 전에는 없었다. 자고로 물건이란 쓰고 낡을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인데 아파트는 그 반대였다. 두세 배 오르는 것은 보통이고 강남의 요지는 10배 이상 이문을 남기는 것도 예삿일이 되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값은 곧바로 고층 아파트 건축으로 귀결되었다. 집 지을 땅은 한정되어 있으니 좁은 땅에 많은 집을 지을 방법은 고층 아파트뿐이니까.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니 사람들은 이제 아파트는 물론 어떤 건축물이든 고층을 선호하게 되었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569m에 이르는 국내 최고 높이의 105층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를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올해 5월 55층 2개 동으로 계획을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원래의 계획대로 105층 건축을 종용하는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여기에 주민들까지 합세해 ‘105층 사수 결의 주민결의대회’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동네 주민들은 왜 105층 초고층 빌딩을 선호할까? 자기 동네에 105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랜드마크로 들어서면 집값이 오르리라는 기대 심리 때문일까? 아니면 2017년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문을 연 555m 높이의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부러웠기 때문일까? 높은 건축물이 주변에 들어서면 일조권이 침해당하고 조망을 가릴 수도 있는데 이상하다. 아무튼 이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고층 빌딩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현대차그룹이 랜드마크로 우뚝할 105층을 포기한 이유는 흔히 말하는 가성비 때문으로 보인다. 오늘날 마천루(摩天樓)로 불리는 10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빌딩은 건축물의 자중과 각 층에 실리는 사람과 적재물로 인한 수직하중을 지지하고, 지진과 바람으로 인한 수평하중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하며, 화재로부터 입주자의 안전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고층부로의 이동이 편리하고 원활하여야 하며, 입주자에게 온도와 습도, 환기 등 적절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고,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 등 각종 설비를 뒷받침하여야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직 동선을 담당하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엘리베이터와 바람과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강건한 구조체다. 높이가 높을수록 고층부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많은 수의 엘리베이터가 필요한데 이는 보통 건축물보다 넓은 면적의 엘리베이터 통로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실내 면적이 줄어들게 된다. 이와 함께, 바람으로 인해 건축물에 가해지는 풍압은 높이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50층이 넘어가면 이에 대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또 다른 고려 사항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고층 빌딩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쉬이 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사항을 고려하면,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축물은 면적 대비 가성비가 50층 이하 고층 건축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105층 랜드마크보다 55층의 실속을 택한 것은 지극히 건전한 기업활동이다.

 

20세기 초, 건축가들이 고층빌딩을 구상했던 당시의 의도는 같은 면적의 땅에 건축물을 고층으로 올리면 나머지 땅을 녹지 등 유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이러한 순진한(?)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현실을 지금 한국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주택의 평균 거주층으로 따지면 아마도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한국이 단연 1등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고 있는 셈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